“자연과 가까운 음식 … 사람·환경 살려”
입력 : 2026-04-21 16:08
수정 : 2026-04-21 16:08
선재 스님과 함께한 ‘장 담그기’ 

사찰음식 명장 고교 행사에 한걸음 
학생들과 함께 전통장 만들며 강연 

바쁜 업무·부실 식사 … 시한부 판정 
절 간장 먹고 1년 만에 건강 회복해 
우리농산물이 가진 치유능력 체득

‘흑백요리사 2’에 출연해 사찰음식에 지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선재 스님(70)이 꿈나무 요리사에게 전통장의 가치를 알리는데 팔을 걷어붙였다. 서울 은평구 신진과학기술고등학교 호텔조리과 1학년 학생들은 매년 직접 장을 담가 급식에 사용한다. 강의 요청을 받은 선재 스님은 이들을 기특하게 여겨, 바쁜 일정에도 최근 학교를 찾았다.

 

◆사찰음식으로 되찾은 삶=“친할머니와 외할머니가 모두 수라간 궁녀 출신이었어요. 외할머니 밑에서 자라며 어려서부터 갖가지 전통음식을 경험했죠.”

출가 후엔 사찰음식이 사람의 몸과 마음을 이롭게 한다는 것을 깨닫고 관심을 두게 됐다. 1994년 중앙승가대학을 졸업하며 ‘사찰음식문화연구’를 졸업논문으로 냈다. 사찰음식을 소재로 한 최초의 논문이었다. 정작 본인은 논문 작성과 사찰 업무에 시달리며 빵과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곤 했다. 인스턴트만 먹다보니 몸이 배겨낼 수 있나. 점점 건강이 나빠지다 간경화가 심해져 1년 시한부 판정을 받기에 이른다.

“시골 절에서 요양하는데 큰스님이 몇십년 된 간장을 단지에 담아 주셨어요. 매 끼니 먹기 전 한숟가락씩 떠먹었죠. ‘저희 어머니보다 먼저 죽을 순 없습니다’라고 기도하면서요. 1년 만에 기적적으로 병이 다 나았어요.”

사찰음식이 지닌 치유 능력을 체득한 스님은 이후 연구와 강연에 더욱 매진했다. 2016년 대한불교조계종이 선정한 사찰음식 명장 1호가 됐다. 2025년 ‘흑백요리사 2’에선 잣 국수, 당근 김밥처럼 보기도 좋고 몸에도 좋은 음식을 선보이며 대중의 이목을 끌었다.

◆우리콩이 만든 장의 힘=“어의였던 허준이 조선시대 임금 평균수명을 조사해보니까 40세였대요. 그런데 스님들은 80세까지 살았더래요. 허준이 스님을 찾아가서 ‘어떻게 그렇게 오래 사십니까’ 물으니 ‘장을 3일에 한번씩만 먹어도 여든까지 살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는 거예요.”

조선시대 궁에서는 사찰이 만든 메주를 가져다 장을 담갔다. 이 메주는 ‘절메주’라 불렸고 집에서 만드는 것보다 4배 정도 크고 넓적했다.

메주는 콩을 물에 불리고, 타지 않게 확인하며 수시간 삶고, 네모난 모양을 만들어 건조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탄생한다. 학생들이 메주를 직접 쑤기엔 제약이 많아 국산콩으로 만든 시판 메주를 사용했다.

“한반도 북쪽에 두만강(豆滿江)이 있어요. 콩이 가득하다는 뜻이죠. 예전엔 우리나라에서 콩을 많이 재배했는데 요즘엔 값싼 외국산을 쓰니까 콩 재배가 줄었어요. 우리땅에서 자란 콩이 신선하고 장을 담가도 더 맛있죠. 국산콩을 먹어야 재배하는 곳도 늘어날 거예요.”

◆기다림 끝에 완성되는 맛=스님의 가르침에 따라 본격적인 장 담그기가 시작됐다. 우선 물 20ℓ에 소금 5㎏을 잘 풀어 염도 20%인 소금물을 준비한다.

“옛날엔 소금물을 하루 전에 만들어 불순물이 다 가라앉기를 기다렸어요. 요즘엔 소금이 깨끗하게 나오니 그럴 필요가 없지요.”

스님과 학생들은 소금물과 메주를 들고 학교 뒤편 장독대로 향했다. 미리 소독해둔 장독에 메주를 차곡차곡 쌓고 소금물을 부어 메주를 완전히 잠기게 한다. 불순물과 냄새를 흡착하는 숯, 항균 효과가 있는 말린 고추, 복을 상징하는 대추를 넣고 뚜껑을 덮는다. 새끼줄을 빙 둘러 감싸면 사람이 할 일은 다 끝났다. 이제부턴 자연의 시간이다.

40∼60일쯤 지난 뒤 소금물과 메주를 된장과 간장으로 나누는 ‘장 가르기’를 한다. 소금물을 흠뻑 머금은 메주를 부서지지 않게 조심스레 건져낸다. 이 메주를 잘 으깨면 된장, 갈색으로 변한 소금물을 면 보자기에 걸러내면 간장이다. 학생 이도현군(16)은 “부엌에 늘 있는 간장·된장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몰랐는데 선재 스님께 배우게 돼 뿌듯하다”며 “빨리 장 가르기 하는 날이 와서 맛보고 싶다”고 했다.

선재 스님은 요리사로서 자세를 당부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자연에 가까운 음식으로 사람을 살리고 환경을 살리세요. 건강한 음식은 사람을 고치는 약이에요.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음식을 맛보려면 때묻지 않은 대지에서 마음껏 성장한 농산물을 골라야겠죠? 이런 식재료를 쓰는 게 종국에는 지구를 살리는 지름길이랍니다.”

황지원 기자 support@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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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은평구 신진과학기술고등학교 학생들이 선재 스님의 가르침에 따라 소금물을 만들고 있다.
① 선재 스님은 “국산콩 메주로 장을 담가야 몸에도 좋고 맛있다”고 강조했다. ② 메주가 항아리에서 소금물을 만나 숙성되면 된장과 간장이 탄생한다. 사진=김원철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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