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면 라벨표기 방식 시행중 알파벳으로 영양수준 평가 일부 식재료 저평가에 반발 환경·동물복지 포함 요구도 통일된 기준 아직 없어 혼란
‘식품포장 전면 라벨’이 유럽 식품계의 뜨거운 화두로 주목받고 있다.
식품포장 전면 라벨은 식품에 들어간 각종 영양소와 첨가물 등의 함량을 표준 권장량과 비교해 핵심만 포장지 앞에 표기하는 방식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유럽에서도 식품포장 후면 라벨을 통해 식품의 각종 영양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여러 제품 성분을 하나씩 비교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보니 제품 선택에 있어 건강상 중요 정보만 표기해달라는 요구가 지속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유럽 주요 국가들이 식품포장 전면 라벨을 도입해 사용 중이다.
식품포장 전면 라벨은 제공 정보에 따라 크게 ‘영양소별 표시’와 ‘요약지표’ 방식으로 분류된다.
‘영양소별 표시’ 방식은 포장 뒷면 라벨의 정보를 간략하게 시각적으로 표기한 것이다. 설탕·소금 등의 조미료와 각종 영양소 함유량을 일일 권장량과 비교해 그 비율을 표시한다. 다만 이 또한 여러 숫자로 표기되는 정보여서 직관적으로 인식되지 않는 한계가 있다.
‘요약지표’ 방식 중 하나인 ‘뉴트리 스코어(Nutri-Score·영양등급제)’는 이 점을 개선한 표기 제도다. 프랑스 공중보건청(SPF)이 고안한 이 제도는 식품의 건강정보를 축약해 A부터 E 중 하나의 알파벳과 고유 색깔로 표시하는 방식이다. 소비자에게 영양성분이 균형 잡힌 A·B등급 제품은 구입하고, D·E등급의 제품은 구입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프랑스와 독일·벨기에·네덜란드·스페인 등 7개국에서 도입해 사용하고 있다.
뉴트리 스코어에 대한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우선 등급 산정의 알고리즘이 공개돼 있다보니 제조사에서 등급을 좋게 받기 위해 영양소 함량을 조정하게 만드는 유인이 있다. 설탕·소금 등의 함량을 낮추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지만 기존의 맛을 유지하기 위해 이를 인공감미료로 대체하거나 단백질과 식이섬유 함량을 인위적으로 높이기 위해 식품첨가제를 사용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특히 이탈리아에서는 정치권이 뉴트리 스코어 폐지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표면적인 반대 이유는 등급 산정이 지나치게 단순화돼 있어 영양학적 균형이 고려되지 않은 왜곡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이면에는 지중해식 식단에서 빠질 수 없는 올리브유나 치즈·프로슈토 등 이탈리아산 주요 식재료가 D·E등급으로 평가됐다는 배경이 있다. 무설탕 탄산음료가 B등급으로 평가된 데 반해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식재료가 건강에 해로운 음식으로 평가된 점에 불만을 표출한 셈이다. 이탈리아는 지난해부터 경고 문구 없이는 뉴트리 스코어를 표기할 수 없도록 하는 등 뉴트리 스코어 사용을 사실상 금지했다.
뉴트리 스코어 진영에서도 등급에 대한 비판을 수용해 지난해와 올해 등급 산정 알고리즘을 개선했다. 올리브유 등 식물성 기름에 대한 등급을 상향하고, 통곡물 식품과 가공·정제 식품에 대한 구분을 강화했다.
또한 음료부문에 있어서는 물 이외에 모든 음료를 B등급 이하로 평가하고, 인공감미료 사용에 대해 부정적인 점수를 부여했다. 비판 여론을 낮춤과 동시에 데이터에 기반한 알고리즘 개선으로 보다 정교한 등급 산정이 가능함을 보여줬다. 하지만 여전히 단일 제품에 대한 평가이기에 영양소간 균형을 고려한 식습관 형성 유도에는 한계가 있다.
식품포장 전면 라벨에 대한 논쟁이 뜨거워지다보니 환경·동물복지 등에 대한 수준을 평가한 등급을 표기 의무사항에 포함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까르푸’ 등 유럽의 주요 유통체인을 중심으로 식품의 생산·유통·소비·폐기의 과정에서 제품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한 ‘에코 스코어(Eco-Score)’가 도입된 게 대표적인 사례다. 표기해야 할 정보가 늘어나다보니 큐알(QR)코드 등 디지털 라벨을 사용하자는 주장까지 나온다.
여러 식품표기법이 난립하는 혼란을 줄이고자 유럽연합(EU)은 당초 지난해 말까지 통일된 전면 라벨 기준을 제안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기준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고, EU는 향후 일정도 밝히지 않고 있다. 2024년으로 예정된 유럽의회 선거 때문에 발표 일정이 지연된다는 지적도 있지만, 직관적이면서 소비자 건강을 전반적으로 향상시킬 식품 표기 기준을 설정하는 게 그만큼 어렵다는 해석도 나온다.
그럼에도 통일된 기준에 대한 요구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식품 생산자 입장에서는 국가별·유통업체별로 다양한 표기 기준을 요구하다보니 관련 비용 부담만 커진다는 어려움이 있다. 소비자 전반에서도 명확하고 통일된 기준에 대한 요구가 크다. 유럽 진출을 염두에 둔 한국 식품업계도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브뤼셀(벨기에)=
이종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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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보고
벨기에 브뤼셀 현지에서 판매 중인 벌꿀 제품(왼쪽·가운데) 포장지에 뉴트리 스코어와 에코 스코어가 표시돼 있다. 당분이 많이 함유돼 있어 등급이 낮다. 포장지 전면에 등급 표시가 없는 제품(오른쪽)은 가격표에 등급이 표시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