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예천 벌방리·백석리 지역 주민 고통 ‘현재진행형’ 농경지·농작물 복구도 더뎌
물난리라는 것이 그렇다. 길이며 집이며 논밭이며 삽시간에 모든 것을 쓸어가버리지만 원상태로 회복하기까지는 황소걸음처럼 느리다.
7월13∼15일 집중호우로 12가구의 집이 토사에 휩쓸리고 두명이 실종된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 14일 오후 다시 찾은 마을은 피해를 본 후 한달이 지나면서, 복구와 구호 작업으로 분주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언뜻 보기엔 재해를 당한 마을이 맞나 싶을 정도로 평온했다.
실종자 수색과 복구 작업을 돕던 경찰·소방·군병력과 자원봉사자들은 모두 철수했다. 일부 119 소방대원들만 상주하며 주민들을 보살폈다.
하지만 마을 곳곳을 누빌수록 생채기는 사뭇 깊어 보였다. 마을 주민의 셈할 수 없는 마음속 고통은 쉬이 사그라지지 않았다. 마을 노인회관에 삼삼오오 모여 휴식을 취하던 어르신의 얼굴에 생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윤혜식 어르신(83)은 “태풍(카눈)이 온다고 해서 집중호우처럼 마을을 휩쓸고 가는 건 아닌가 걱정이 컸다”면서 “지금도 비바람이 조금이라도 창을 두드리면 노인회관으로 대피하기 일쑤”라며 한숨을 몰아쉬었다.
물난리 취재 때 만난 후 재회한 유순악 어르신(87)은 “지금도 악몽을 꾸며 소리를 지른다”면서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갈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고 말했다.
벌방리노인회관은 현재 이재민 임시 대피시설로 활용한다. 대부분 어르신이 긴급 복구한 집으로 돌아갔고, 집이 반파·완파된 어르신들 10여명만 거주하고 있다.
회관에 누워 있던 다른 할머니는 “집 지붕이 모두 날아가고, 가전제품은 모조리 물에 잠겨 사용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면서 “세탁기라도 빨리 지원해주면 이불 빨래라도 혼자서 할 텐데…”라며 넋두리했다.
마을 입구에선 임시 거주시설 설치 공사가 한창이었다. 집이 완전히 망가지거나 반파된 12가구 10여명의 어르신이 묵을 임시 주택이다. 한동이 27㎡(8.2평) 규모로 냉난방시설과 주방·화장실을 갖춘 원룸형이다. 경북도는 7월13∼15일 집중호우로 도내에 집이 파손된 48가구 83명에게 임시 주택을 마련해준다.
☞ 5면으로 이어짐 예천=유건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