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흙의 날 기념 특별좌담회] “토양 중요성 도시민도 공감 … 함께하는 보전활동 필요”_수정
작물 생산과 생태계 유지하는 토양 정부 정책덕에 건강성 지표 좋아져 농진청도 흙 관리기술 연구에 박차 기관 제공 디지털정보 해석 어려워 농민이 쉽게 이해하도록 개선 시급 적정시비 확대 위해 유인책도 중요
흙의 소중함과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법정기념일로 지정된 ‘흙의 날(3월11일)’이 올해로 여덟번째 생일을 맞는다. 정부는 제8회 흙의 날 기념식을 10일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관 대강당에서 개최한다. 농민신문사는 이에 앞서 2월24일 서울 서대문구 본사에서 각계 전문가와 관계자,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좌담회를 마련했다. ‘건강한 흙과 스마트 토양관리’라는 주제로 건강한 흙을 지키기 위한 다양한 방안과 과제가 논의됐다.
참석자 명단
▲주원철 농림축산식품부 친환경농업과장 ▲홍성진 국립농업과학원 농업환경부장 ▲이승헌 한국토양비료학회 수석부회장(한국농어촌공사 연구기획실장) ▲강선아 청년농업인연합회 고문(지오쿱협동조합 대표·우리원 대표)
진행=이경석 농민신문 산업부장
-2015년 법정기념일 ‘흙의 날’이 제정되고 이듬해 제1회 흙의 날 기념식이 열렸는데 어느덧 8회째를 맞았다. 각 분야에서 지난 8년을 돌아본다면.
▶주원철=흙의 소중함을 알리고자 국가기념일로 제정된 지 8년이 됐다. 물론 그 이전에도 농협을 중심으로 ‘흙 살리기’ 운동이 진행됐지만 국가기념일 제정 이후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라면 정부가 흙의 건강성과 토양을 중심으로 한 환경 순환에 공식적이고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실제로 흙의 건강성을 나타내는 많은 지표들이 좋아졌다. 우리나라 토양은 기본적으로 영양소가 풍부하지 않아 유기물 투입이 필요한데 유기물 투입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홍성진=일반인에게도 흙의 중요성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는 점이 흙의 날의 가장 큰 의의다. 이전에도 농민들이야 당연히 흙의 중요성을 알았지만 흙의 날을 계기로 일반인도 공감을 하게 된 것이다. 또 탄소중립이라는 거대한 목표 속에서 흙과 기후변화의 관계에 대한 논의도 계속되고 있다. 농촌진흥청도 토양을 건전하게 관리할 수 있는 적정 양분·수분 관리기술, 시비처방서 발급 관련 기술들에 대한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강선아=아쉬운 점도 여전히 남아 있다. 8회째를 맞았지만 여전히 ‘흙의 날’에 대한 인지도가 높지 않은 상황인 것 같다. 또 연구나 정책은 진행되고 있지만 토양에 대한 농민들의 인식은 오히려 약해진 측면도 있다. 특히 청년농들의 경우 시비처방서를 발급받거나 스마트팜 등을 이용해 토양을 분석하는 것에 대한 인식은 높지만 스스로 토양에 대해 치열하게 연구하는 모습을 보긴 어려워졌다.
-‘흙의 날’은 건강한 흙의 중요성을 알리고 보전하기 위해 제정된 기념일이다. 건강한 흙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나.
▶홍성진=크게 세가지로 나눠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흙은 농업의 기반인 만큼 작물의 생산성을 지속·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두번째는 오염 문제와 관련이 있다. 비료나 농약 등을 살포하면 여러 오염이 발생하는데 비점 오염의 역할을 하지 않는 게 좋은 흙이다. 마지막으로 환경적으로 완충적 역할을 해야 한다. 홍수 등 재해를 예방하는 능력이 그 예다. 환경 변화에 대한 완충능력을 가지고 있는 게 건강한 흙이라고 할 수 있다.
▶강선아=크게 두가지 관점에서 건강한 흙을 정의할 수 있다. 미생물 등 흙 속 생태계가 잘 이뤄져 있는 것과 작물 생산성이 높은 흙, 이 두가지다. 농작물을 잘 자라게 하면서도 생태계를 유지하는 친환경농업이 건강한 흙과 맞닿아 있는 이유다.
▶이승헌=20년 이상 대학원 수업을 진행하며 늘 첫날 토양의 정의에 대해 물어본다. 답은 결국 ‘토양은 살아 있는 자연체다’로 내릴 수 있다. 우리는 지구 표면을 밟고 서 있고, 거기에 흙이 있다. 흙이 있으므로 식물 뿌리와 건물을 지지하고, 지하수가 함양된다. 이런 토양의 작물학적·생태학적·원예학적 기능을 ‘소일 펑션(Soil Function·흙의 기능)’이라고 부르는데 이같은 소일 펑션을 제대로 작동시킬 수 있는 게 건강한 흙이다.
-올해 주제가 ‘건강한 흙과 스마트 토양관리’인데 건강한 흙과 스마트(디지털) 토양관리는 어떻게 연결될 수 있나.
▶이승헌=아이가 열이 날 때를 상상하면 디지털 토양관리의 개념을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예전엔 아이를 키우다 열이 나면 할머니나 어머니가 등에 손을 넣어보고 해열제를 먹였다. 이게 아날로그식 관리다. 최근엔 집에서도 간단히 체온을 잴 수 있는 기술이 많이 나와 있다. 숫자로 체온을 표시해주니 열이 얼마나 높은지 정확히 알 수 있다. 그걸 보고 해열제 처방전에 적힌 연령과 체온에 맞춘 용량의 해열제를 먹이면 되는 것이다. 디지털 토양관리도 이와 같다. 과거엔 단순히 이 땅은 좋다 나쁘다에 그쳤지만 이제는 흙을 떠서 농업기술센터나 농협에 가져가 분석하면 시비처방서를 주는 시대가 됐다. 심지어 계측 센서를 땅에 묻고 데이터를 받아 집에서 스마트폰으로 작동·관리까지 할 수 있는 시대다.
▶주원철=이런 접근 방식이 정보에 익숙한 청년농들 사이에선 특히 크게 확산하고 있다. 또 농업 정보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추세인 만큼 더 많이 활용될 것으로 예상한다. 아날로그 정보는 만든 사람만 쓰고 공유되지 않지만 디지털화된 정보는 저렴한 가격에 공유될 수 있기 때문에 귀농인·청년농 등 농업에 대해 경험이 없는 사람들도 시비처방서만 보면 적절한 양분을 줄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스마트 토양관리를 통한 건강한 흙을 지키기 위해 남은 과제가 있다면.
▶홍성진=농진청의 토양환경정보시스템 ‘흙토람’을 통해 여러 토양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만 변화하는 환경 속에선 정보의 정확성 문제가 존재한다. 또 전국의 필지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필지 확대도 필요하다. 제공된 정보를 사용자들이 해석하지 못한다는 것도 숙제다. 사용자들이 좀더 보기 편한 정보가 제공돼야 한다. 농민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토양 정보에 대한 확인과 관리 주체는 농민이 돼야 한다. 토양 정보를 기반으로 작목 선정, 물 관리, 시비 처방 등 전반적인 의사 결정을 해나갈 준비를 농민 스스로 해야 한다.
▶강선아=토양 정보 데이터가 신뢰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농가가 직접 시료를 채취해 보내는데 신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 시비처방 등을 받아도 받은 기준을 따라할 의지가 없는 농가들도 많다. 변화된 정책을 따라갈 수 있도록 하는 유인책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또 유기농업을 하는 농가의 입장에선 지금의 토양관리가 부족하다는 생각도 든다. 현재 우리나라는 유기농산물에 대해 최종적으로 생산된 작물을 가지고 검사를 하는 체계다. 해외에선 작물과 토양을 같이 검사한다. 유기농업 신뢰도를 높이려면 토양분석도 함께 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승헌=연구·개발과 교육·지도가 늘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건강한 흙을 지키기 위한 저변을 확대하려면 우리(농업) 담 밖에 있는 도시민·소비자와도 함께해야 한다. 도시 소비자와 함께할 수 있는 토양 보전 활동이나 흙의 소중함을 알리는 활동이 필요하다.
또 적정 생산량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무기질비료를 많이 주면 생산량은 높아지겠지만 태풍 등의 재해에 약할 뿐 아니라 토양환경에도 영향을 준다. 과다 시비한 곳을 생산량 기준을 삼으면 농업은 환경 보전을 위한 역할을 할 수 없다.
정리=김다정·이연경 기자 kimdj@nongmin.com
사진=현진 기자 sajinga@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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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의 날(3월11일)’을 앞두고 농민신문사가 2월24일 서울 서대문구 본사에서 ‘건강한 흙과 스마트 토양관리’를 주제로 연 좌담회에서 각계 전문가들이 토양보전 활동 성과에 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