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이 사라진 세상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노르웨이 작가 마야 룬데의 소설 <벌들의 역사>에서는 꿀벌 실종으로 인한 디스토피아적 세계가 펼쳐진다. 2098년 벌들이 사라진 세상에서 중국 쓰촨지역에 사는 주인공 타오는 나무에 올라 꽃가루 바르는 일을 한다. 그러나 사람 손은 벌의 효율을 따라가지 못하고 과일값은 치솟는다. 생태계는 파괴되고 민주주의는 무너진다. 벌의 멸종이 인간사회의 붕괴로까지 연쇄작용을 일으킨 것이다. 다소 극단적인 설정이긴 하지만 전세계 식량 90%를 차지하는 100대 주요 작물 가운데 70여개가 꿀벌 없이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발표를 고려하면 상상하지 못할 상황도 아니다.
2006년 미국에서 처음 보고된 꿀벌군집 붕괴현상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매우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그러나 대응 면에서 외국과 우리나라는 천지 차이다. 꿀벌군집 붕괴현상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자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직접 나서 꿀벌 실종 원인을 찾고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으며 백악관에 벌통을 들여 벌을 치기도 했다. 유럽연합(EU)은 꿀벌을 비롯한 수분 매개체를 보호하기 위한 범국가적 위원회를 설립해 가동하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의 인식과 대응은 매우 안이하다. 지난달 정부가 발표한 양봉농가 종합지원대책만 봐도 아직 우리 사회가 꿀벌 실종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위 현장에서 만난 한 양봉농가는 “대부분의 농가가 키우던 벌의 거의 전부를 잃었는데 정부에서는 고작 8.2%만 줄어들었다고 발표했다”며 분노했다. 대책 마련 전에 문제를 인식하고 진단하는 것부터 정부와 농가 사이의 시각차가 컸다.
지금 정책당국에 필요한 것은 생각의 확장, 상상력의 발휘다. 꿀벌 소멸은 양봉농가만의 문제가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 당장 꿀벌 실종으로 올해 수박·참외 등 과채류값이 상승할 것이란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정부에서는 인공수분이나 뒤영벌로 과채류의 수분을 대체할 수 있다고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것들이 꿀벌을 대체하기는 역부족이라고 입을 모은다. 양봉농가의 위기는 시설농가의 위기로 이어지며 공급부족에 따른 물가상승은 일반 시민들의 몫이 될 것이다.
그린피스는 최근 한국에서 꿀벌살리기 운동을 전개한다고 밝히며 농림축산식품부가 꿀벌을 가축산업의 일종으로만 인식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꿀벌이 사라지는 세계에서는 사람도 살아남기 힘들다는 사실을 모두가 기억해야 한다.강원=양재미디어 기자 yjmedia@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