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빈집 6만채 ‘훌쩍’ … 지자체마다 재생 프로젝트 고심 경관 해치고 붕괴 등 안전 위협 철거비용 지원해 정비에 속도 개보수 후 파격적 조건에 임대 거래·활용 활성화 등 유도해야
“쓰레기 쌓인 것 좀 봐요. 전쟁 난 것 같죠?”
7일 전남 영암군 삼호읍 난전리의 한 빈집. 무릎 높이만큼 자란 잡초들을 헤치고 마당으로 들어서자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는 풍경이 펼쳐졌다. 부서진 가구와 옷가지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고 주변엔 하루살이들이 윙윙댔다. 기둥에 걸린 명패가 이곳이 한때 사람이 살던 평범한 집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이 마을에서 50여년간 살았다는 한 주민은 “어르신들이 돌아가시면서 마을 곳곳에서 빈집이 빠르게 는다”며 “일부는 철거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방치돼 흉물이 돼가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1년 이상 거주·사용하지 않은 빈집 수는 2022년 기준 13만2052채다. 이 가운데 농촌 빈집은 6만6024채에 이른다.
◆애물단지를 보물단지로…지자체별 ‘고심’=오랜 시간 방치한 빈집은 흉물로 변해 농촌 경관을 해칠 뿐 아니라 붕괴나 화재·범죄 발생 위험이 있어 주민 안전을 위협한다. 전국 단위 도·농 빈집 정보플랫폼인 ‘소규모&빈집정보 알림e’에 따르면 철거 대상인 4등급에 해당하는 빈집은 1만2422채다.
지역소멸 위기 속에서 빈집이 마을의 골칫거리가 되자 정부는 7월3일부터 안전사고·범죄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빈집을 방치하는 소유주에게 최대 1000만원의 이행강제금을 부과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지방자치단체장의 직권으로 철거했을 때 철거 비용이 보상액보다 많으면 그 차액을 소유자에게 징수하도록 하는 근거도 마련했다.
빈집을 활용해 인구 유입 효과를 노리는 지자체들의 움직임도 나타난다. 전남 강진군(군수 강진원)은 지역으로 이주를 희망하는 이들에게 개보수한 빈집을 파격적인 조건에 내놨다. 보증금은 100만원, 월 임차료는 1만원이다.
현재 빈집 75곳이 개보수사업 대상으로 선정됐으며 이 가운데 47곳의 공사를 마쳤다. 지난해말부터 임대하기 시작해 22가구가 입주해 있다. 군 관계자는 “입주 문의가 많게는 하루 20∼30건이 온다”고 귀띔했다.
해남군(군수 명현관)은 지난해 농식품부 ‘빈집 재생 프로젝트’의 전국 1호 대상지로 선정되기도 했다. 공공·민간이 빈집 재생에 필요한 재원을 투자해 빈집을 농촌 맞춤형 시설로 재활용하는 게 핵심이다.
현재 마산면의 빈집 8채를 개보수해 6월 중순 완공을 앞뒀다. 마산초등학교로 전학하는 자녀가 있는 가구를 대상으로 입주 신청을 받는다. 입주 대상자는 2030년 8월까지 무상으로 빈집을 빌려 살 수 있다. 내년엔 북평면을 중심으로 빈집을 활용해 농촌체험마을을 방문하는 체험객이 쓸 마을호텔 조성에 나선다.
전남도(도지사 김영록)는 2027년까지 사업비 140억원을 투입해 빈집 정비사업을 추진한다. 빈집 1만채를 주차장·쉼터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도 관계자는 “전남 22개 시·군 모두에 빈집 철거비 지원금으로 150만∼500만원을 지급하며 사업 속도를 올리고 있다”며 “지난해 빈집 1700채를 정비했다”고 설명했다.
◆빈집 많다더니, 정보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이렇게 농촌에 빈집은 급증하는데 거래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부동산 매매 정보를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앱)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도시와 달리, 농촌에선 빈집 정보를 검색하기가 어렵다. 거래를 이어줄 수단이 마땅찮아 관심 지역의 마을 이장에게 직접 문의해야 하는 실정이다. 집을 팔고자 하는 사람도 곤혹스럽기는 매한가지다.
서울에 거주하는 박홍준씨(66)는 “영암군 시종면에 있는 집을 물려받았지만 5년째 손도 못 대고 있다”며 “처분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데 어디에, 어떻게 정보를 올려야 할지 몰라 시간만 헛되게 보내야 했다”고 토로했다.
빈집 거래 플랫폼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국토정보공사의 ‘공가랑’이 빈집 정보를 제공했지만 이용률이 저조해 운영을 종료했다.
임미화 전주대학교 경영대학 부동산국토정보학과 교수는 “집주인 개인정보가 걸려 있어서 (지자체나 공공기관이) 빈집 매매 플랫폼을 관리하기엔 한계가 있다”며 “(그렇다고 민간 플랫폼을 통한 자발적인 거래를 유도하기엔) 집주인이 빈집 처분에 소극적인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빈집 0원 거래’가 성공한 일본 사례를 참조해 중앙정부는 집주인이 빈집 처분에 자발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세제 개편 같은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며 “이와 함께 지자체는 지역 상황에 맞게 빈집을 (주차장·공원 등으로) 용도 변경해줘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암=이시내 기자 cine@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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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영암(왼쪽과 가운데)과 영광지역 농촌 일대에 버려진 빈집이 흉물스럽게 방치돼 주변 경관을 해칠 뿐 아니라 붕괴 위험까지 있어 주민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