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곡법·농안법 파행 … 농가 경영안전망 공백 메우려면 국회·정부 대책추진 답보 상태 수입안정보험 확대도 성과 미미 보험가입 거부감 낮추기 ‘과제’ 생산비 관련 실태 조사 나서야 美 등 촘촘한 방안 마련에 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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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5년간 농업소득의 전년 대비 증감률이다. 낮은 데 더해 불확실한 농업소득으로 농가가 고통받는 동안 21대 국회에서는 ‘법안 강행 처리→재의요구권(거부권)→폐기’의 도돌이표가 이어졌다. 한국종합농업단체협의회(상임대표 최흥식)는 최근 성명서를 내고 “경영안전망 확충 논의가 본질과 달리 정치재로 비화하며 농업경영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실질적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정부 대책 추진도 답보 상태다. 정부는 지난해 4월 국회를 향해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고 ‘농가 경영안정을 위한 프로그램 도입’에 나서겠다고 밝혔지만, 추진 성과는 빈손에 가깝다.
22대 국회에서도 농가 경영안전망 공백이 계속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농가 경영안전망 제자리걸음=21대 국회에서 농가 경영안전망 확충은 미완의 과제가 됐다. ‘양곡관리법 개정안’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 개정안’은 5월28일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전북 정읍·고창)은 22대 국회 임기 첫날인 5월30일 ‘농안법 개정안’ ‘양곡법 개정안’을 1호 법안으로 발의했다. 하지만 여야가 대화 없이 대치를 이어온 상황에서 농가 경영안전망은 구멍 난 채로 유지되리라는 우려가 많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부터 수입보장보험(수입안정보험)을 확대하겠다고 밝혔지만 포괄적인 시행 계획만 내놓았을 뿐 실제 추진 성과는 미미하다. 특히 ‘확장성’에 회의적인 의견이 많다. 대부분 농가가 농업과세 특례로 소득을 신고하지 않아 보험금 지급 기준이 되는 ‘수입’ 파악이 어렵기 때문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정부가 확대 추진하려는 수입안정보험은 농가의 수입 정보 없이도 해당 품목 시장가격과 개별농가 수확량 등을 활용하는 방식이어서 일각의 우려와 달리 즉시성과 확장성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타개책은=제도 안착을 위해 농가가 소득을 공개하도록 유인책을 제공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정원호 부산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는 “수확량·가격을 따로 조사하지 않고 농가가 소득을 공개하도록 유인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며 “농가가 소득을 공개하고 수입보장보험에 가입하면 과거 5년 수준의 생활을 보장하는 보험금을 받을 수 있게 하는 등 혜택을 마련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홍보하는 식”이라고 했다.
보험 가입에 관한 농가의 거부감을 낮추는 일도 과제로 언급된다. 해외 주요국에서는 보험을 중심으로 경영안전망을 설계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보험료 부담으로 가입을 꺼리는 농가가 적지 않다.
보험 외에 다양한 경영안전망을 마련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양곡법 개정안’ ‘농안법 개정안’을 토대로 절충안을 마련해 농산물 가격 변동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한 농업계 관계자는 “완벽한 제도는 없다”며 “논란이 되는 생산비·과잉생산·재정문제 등은 어느 수준에서 합리적으로 감내할지 조율하면 된다”고 말했다.
경영안전망 확충방안을 논의하기에 앞서 생산비 관련 실태 조사·파악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강마야 충남연구원 연구위원은 “단적으로 사과값이 문제가 된다고 하면 원인은 무엇인지, 기후변화로 생산량이 떨어졌다면 정확한 감소량을 추산하는 것은 물론 비료·농약·인건비 등 생산비 부담은 얼마나 증가했는지 파악해야 한다”며 “현재 농촌진흥청에서 품목별 출하실태 등을 조사하고 있지만 표본이 너무 적다”고 꼬집었다.
◆경영안전망 촘촘한 해외 사례는=해외 주요국의 농가 경영안전망은 ‘다층성’에 방점을 두고 있다. 미국·일본·캐나다는 재해대책과 경영위험관리 수단을 나눠 운용한다. 피해규모가 클 때는 재해대책을 통해 농지·농업 관련 시설 복구를 지원하고 생산량·가격 하락으로 인한 손실은 정책보험이나 별도의 정책을 통해 지원하는 식이다.
보험·적립·직불 등 수단도 다양하다. 일례로 미국은 가격을 보장하는 가격손실보상제도(PLC), 수입을 보장하는 농업위험보상제도(ARC)뿐 아니라 수입보장보험을 품목·농가 단위로 모두 운용하고 있다.
캐나다도 보험에 더해 ‘소득안정계정’ ‘농업투자계정’ 등을 운용하고 있다. 소득안정계정은 불안정한 시장 상황, 생산 감소, 생산비 증가 등으로 농업소득이 크게 하락하면 이를 보전해주는 제도다. 농가가 수수료, 관리 비용을 내고 가입하면 정부가 소득의 일정 수준을 보전하는 식이다. 최범진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정책조정실장은 “농가들이 소멸식 보험에 거부감이 큰 상황에서 농업 소득·투자 계정도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소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