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크리에이터] 잊혀가던 공간 … 감성 카페·식당 즐비한 ‘소리단길’로 재탄생
[로컬크리에이터] (13)강동완 디벨로펀 대표 <경남 창원> 나만의 브랜드 만들기 위해 고향으로 땅값 저렴하고 한옥 많은 ‘중동’ 주목 오래된 가옥, 빈 건물, 여인숙 등 개조 젊은이들 북적이는 ‘맛과 멋’의 거리로 향토 기업 ‘몽고식품’과 협업 진행도 5000명 발길 ‘세모로 축제’ 성과까지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 경북 경주 황리단길이 있다면 경남 창원에는 ‘소리단길’이 있다. 소리단길은 창원 원도심이던 의창구 중동 골목을 부르는 이름으로 행정구역상 중동이지만 토박이 사이에선 소답동으로 통한다. 이곳은 3년 전부터 세련된 감성의 카페와 식당이 들어서면서 점차 ‘소리단길’로 불렸다. 놀거리가 부족하다던 창원에 문화거리가 생기니 시민도 지방자치단체도 반응이 뜨겁다. 강동완 디벨로펀 대표(40)는 ‘소리단길의 아버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디벨로펀은 강 대표가 2020년 8월 설립한 공간 기획 전문 기업이다. 유명 대기업에서 상품기획자로 일하던 강 대표는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품고 거리로 나와 서울 이태원·익선동에서 와인바·만화방으로 연달아 성공을 거두고 고향인 창원으로 돌아왔다. 작은 성공에 안주하고 싶지 않아서다. 그는 “가게 수입에 만족하고 편안하게 살던 시절이 지속되자 이게 맞나 싶었다”면서 “부동산 자격증 공부를 하다가 나보다 훨씬 더 성공했지만 도전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서 가게를 넘어 거리 하나를 브랜드로 만들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2020년초 강 대표는 서울과 창원을 오가며 새 터전을 물색했다. 그렇게 찾은 소리단길 자리는 39사단이 경남 함안으로 이전한 뒤 상권이 죽은 중동이었다. 상권이 쇠퇴해 위험부담이 컸지만, 그는 땅값이 싸고 한옥 등 오래된 가옥이 많다는 점에 주목했다. 시작은 쉽지 않았다. 수십년 넘게 한자리에서 살아온 주민의 경계를 뚫고 들어가야만 했던 것이다. 강 대표는 “서울에서 사기꾼이 왔다며 문전박대당하기 일쑤였다”며 “어떤 분은 이사 당일 칼을 들고 돈을 더 달라며 행패를 부렸다”고 회상했다.
진심은 결국 통했다. 그는 빵을 돌리고 틈틈이 막걸리도 한잔하며 주민들과 친해졌다. 주민에게 건물에 관한 추억 이야기도 찾아가 들었다. 잊혀가는 공간은 하나씩 새로 태어났다. 레스토랑 ‘박말순’은 박말순 할머니가 60년 넘게 살아온 한옥을 개조한 장소다. 방치돼 있던 ‘금성 여인숙’은 실내 온수풀인 ‘포시즌스 풀’로 변신했다. 안 쓰는 빈 건물엔 카페 ‘오우가’를 지었다. 거리는 깨끗해지고 활기가 생겼다.
현재 디벨로펀은 소리단길에 직영 브랜드 3개를 운영하며, 소리단길의 다른 브랜드 컨설팅도 맡았다. 코로나19 대유행이라는 힘든 시기를 지나면서도 2020년 5명으로 시작한 회사는 올해 기준 20명을 넘겼다. 지난해 매출은 15억원을 기록했다.
“지역이 바뀌니 주민들도 젊은 사람이 많이 온다며 좋아하셨죠. 잊혀가는 공간에 이야기만 더해도 경쟁력이 생겨 보람 있습니다.”
그는 다른 기업과 협업하는 데도 힘썼다. 창원지역 기업인 몽고식품의 ‘몽고간장’이 대표적이다. 작은 간장병에 들어간 콜드브루는 지난해 9월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 팝업스토어에서 주당 3000만원 매출을 올렸다. ‘톳 명란 오일 파스타’는 몽고식품 ‘매운간장’과 마산어시장에서 나온 제철 재료를 이용해 만들어 인기를 끌었고, 이후 레스토랑 ‘박말순’의 대표 메뉴로 자리 잡았다. 또 다른 창원 향토기업 무학소주에도 문을 두드리고 있다. 로컬크리에이터와의 협력도 눈에 띈다. 춘천 로컬 맥주 양조장인 감자아일랜드와 협업해 ‘박말순 맥주’를 출시했다.
강 대표는 명실상부 창원 대표 로컬크리에이터로 인정받았다. 지난해 7월 디벨로펀이 창원시 ‘로컬크리에이터 네트워킹 운영사’로 선정되면서 로컬크리에이터를 연결하는 역할을 맡았다. 네트워킹은 곧 콘텐츠로 이어졌다. 지역 크리에이터와 협력해 지난해 9월 ‘세모로(세상의 모든 로컬크리에이터)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세모로 페스티벌은 공식적으로 5000여명이 방문했다. 민간 주도 지역축제로서는 괄목할 만한 성과였다.
그는 올해 밀키트사업을 추진한다. 로컬 브랜드가 얼마나 뛰어난지 전국에 선보이겠다는 포부다. 경남 진주에 카페 ‘오우가’ 분점을 계획하고, 식품제조 가공업 인증을 받는 등 확장 준비가 한창이다.
“부울경지역뿐 아니라 전국 플레이어들과 경쟁해서 멋진 브랜드를 계속 만들고, 미래엔 주거·문화·상업 시설이 긴밀하게 연결된 광역 단위 도시재생사업을 해보고 싶습니다. 언젠가 해외로 진출하는 꿈도 꿔봅니다.”
창원=정성환 기자 sss@nongmin.com
사진=김도웅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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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에서 활동하는 로컬크리에이터 강동완 디벨로펀 대표. 소리단길 골목골목이 그의 손길이 닿자 버려졌던 거리에서 젊음이 숨 쉬는 곳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구옥 4채를 개조한 한옥 카페 ‘오우가’ 전경. ‘물·돌·소나무·대나무·달’ 등 5가지 자연 정물로 꾸몄다.
창원 향토기업 ‘몽고식품’과 협업한 간장병 모양의 콜드브루가 인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