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실련 “무분별한 TRQ 운용으로 농민 피해 우려”
입력 : 2023-10-17 11:13
수정 : 2023-10-17 11:13
성명 내고 합리적 운용 촉구 
“농산물, 물가지수 영향 적어 
정작 소비자 얻는 혜택 미미 
제도 도입 취지와도 어긋나” 

정치권도 “실효성 의문” 일갈

정부가 물가안정을 명목으로 양파를 비롯해 건고추·대파·생강 등으로 저율관세할당(TRQ)과 할당관세 수입 대상 품목을 무분별하게 확대하는 가운데 수입 의존적인 물가정책에 대해 시민사회와 정치권의 질타가 쏟아졌다. 이같은 정책 기조가 향후 한국 농업의 기틀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담긴 비판으로, 농산물 가격안정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경실련 “정부 농산물 TRQ 운용…농민에게 희생 강요”=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최근 “정부의 무분별한 농산물 TRQ 운용으로 농민 피해가 우려된다”며 정부의 합리적 운용방안을 촉구하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경실련은 “지난 8월 정부가 양파 TRQ(관세 50%) 1만t을 9월 중 도입한다는 추석 민생대책을 발표할 때 농민들은 무차별 농산물 수입에 반대하는 전국농민대회를 개최했다”며 “당시 농민들은 양파값이 하락세로 접어들었는데도 TRQ 증량 물량(9만t)을 모두 채우겠다는 정부 태도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밝혔다”고 현 농업계 분위기를 전했다.

경실련은 정부의 TRQ 수입이 농민을 희생시키는 정책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경실련은 “정부는 소비자 물가안정을 빌미로 양파뿐 아니라 마늘·건고추·달걀·쇠고기·돼지고기·생강 등으로 TRQ 수입을 늘려갔다”며 “하지만 물가안정대책은 물가지수 가중치가 높은 상품에 집중해야 효과가 있는데, 가중치가 0.3%도 안되는 농산물을 수입해 농민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무분별한 TRQ 운용”이라고 꼬집었다.

경실련은 현재 TRQ 수입제도가 본래 취지에 맞지 않게 운용된다는 점도 지적했다. 경실련은 “TRQ는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전환 과정에서 도입된 것으로, 시장접근 기회를 보장하고자 일정 물량까지는 저율관세를 부과하고 초과 물량에는 고율관세를 적용하는 제도”라며 “이는 농산물을 정부가 지정한 공공기관이 수입·관리함으로써 수입 농산물이 내수시장에 끼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고 농산물 협상 합의안을 이행토록 하기 위한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현재 TRQ 물량이 풀리면 저가 수입 농산물이 시장에 유통돼 국산 농산물 가격은 더욱 하락하게 될 위험이 크고, 가격 하락이 나타나더라도 그것이 직접 소비자 이익으로 돌아가지 않고 특정 수입업체가 폭리를 취할 우려가 커지게 된다”고 TRQ 운용에 따른 부작용을 제기했다.

경실련은 정부가 합리적인 TRQ 운용방안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경실련은 “시민들은 좋은 먹거리를 적정한 가격에 먹을 수 있어야 하고, 농민들은 생산비를 회수해 안정적으로 농사를 이어가기 위해 농산물 가격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렇기에 농민들의 희생이 뻔히 보이는 수입 의존 방식으로 물가대책을 추진해서는 안되며, TRQ 도입 목적에 맞게 합리적으로 운용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정치권도 비판 가세…“TRQ·할당관세 실효성 의문, 근본 대책 마련해야”=정치권에서도 현 정부의 농산물 수입정책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11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대한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원택 더불어민주당 의원(전북 김제·부안)은 “농업소득이 계속 쪼그라들고 있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수입 농산물”이라며 “2022년 농산물 수출액은 90억달러가 안되는데 수입액은 390억달러가 넘어 무역적자가 300억달러 이상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이같은 무역수지 악화의 원인 중 하나로 정부의 TRQ·할당관세 수입 확대를 지목했다. 이 의원은 “정부는 대두 1만t, 참깨 3000t을 증량하거나 대파·양파·마늘·생강 등이 TRQ 또는 할당관세로 들어올 수 있도록 열어놨다”며 “국민 생활을 위해 필요한 부분이 있으나 이같은 수입은 농가소득과 직결되기 때문에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TRQ·할당관세 수입의 실효성 논란도 제기됐다. 이 의원은 “TRQ·할당관세 수입이 물가 잡는 데 실효성이 있었는지 검증해야 한다”며 “자체 분석 결과 양파값이 TRQ 수입 1∼3개월 이후에도 크게 변화가 없었는데 농민은 손해, 소비자가격은 그대로, 수입업자는 이득을 보는 구조가 아닌지 의문이 든다”고 비판했다.

TRQ 수입 물량 증량 과정에서 수급조절 매뉴얼이 무시됐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이 의원은 “양파의 경우 TRQ 수입 물량을 증량할 때 수급조절 매뉴얼을 따라야 하는데, 안정대 가격임에도 상승 심각 단계 가격으로 대처한 것이 아닌가”라며 “TRQ 수입 물량 증량은 농민에게 큰 상처를 주고 소득 감소로 직결되기 때문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민우 기자

minwoo@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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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물가안정을 명목으로 저율관세할당(TRQ)·할당관세 수입 품목을 대폭 확대하자 시민사회와 정치권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사진은 5월 서울 용산구에서 개최된 ‘전국 양파·마늘 생산자대회’에서 농민들이 정부에 수입 중단을 요구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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