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467) 결초보은
입력 : 2023-10-10 13:09
수정 : 2023-10-10 13:09
죽을뻔한 父 애첩 살려주니 
그 부모가 풀 엮어 은혜 갚아

춘추전국시대 진(晉)나라 군주, 위무자(魏武子)에게는 애첩(愛妾)이 있었다. 이 어리고 영특한 애첩은 천하일색에 학문에도 막힘이 없다. 낮에는 위무자 옆에서 정사를 돕고 밤에도 위무자 곁을 떠나지 않고 무슨 일이든 도왔다. 낮이나 밤이나 위무자와 애첩은 한 몸이 되어 한시도 떨어질 줄 몰랐다.

위무자가 은근히 걱정되는 건 자신의 늙음이다. ‘내가 죽으면 이 애를 어찌할꼬.’ 천하의 보약을 다 먹어도 세월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그렇게 걱정하던 일이 마침내 현실로 다가왔다. 천하를 호령하던 위무자도 지나가던 삭풍에 고뿔이 들어 드러눕고 말았다. 대수로이 여기지 않았던 고뿔이 떠날 줄 모르고 위무자를 병석에서 풀어주지 않았다.

위무자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이제 막 피어나는 꽃봉오리를 쳐다보며 기나긴 한숨을 토했다. “아버님, 부르셨습니까?” “그래 들어오너라.” 두 아들, 왕자들이 들어오자 애첩이 자리를 피했다.

“얘들아, 내가 죽거든.” “아버님, 왜 그런 말씀을….” 위무자가 힘없이 말하자 두 아들이 이구동성으로 말을 막았다. “내 병은 내가 안다. 못 일어날 것 같다. 내가 죽고 나면 아직 살날이 구만리 같은 너희 새엄마를 위하여 좋은 혼처를 구해 재혼하도록 살길을 열어줘라.” “아버님, 이번에 경면주사도 구했고 조선에서 백년근 산삼도 구해서 어의가 법제하고 있습니다.” 죽은 사람도 벌떡 일으킨다는 경면주사에 불로초 조선 산삼도 위무자를 일으켜 세우지 못했다.

콜록콜록 아침이면 요강에 오줌 반 피 반이 되는 그 와중에도 위무자는 애첩과 떨어지지 않았다. 점점 쇠약해져가는 위무자가 다시 두 아들을 부르자 애첩이 자리를 피했다. “내가 죽거든 저 아이를 함께 묻어다오.” 며칠 후 위무자는 눈을 감았다.

맏아들 위과(魏顆)와 신하들을 등에 업은 동생 위기(魏錡)가 맞섰다. 죽은 임금 묘에 애첩을 산 채로 묻는 순장(殉葬)이 위무자의 마지막 유언이라는 차남과 신하들에게 장남 위과는 이렇게 말했다.

“돌아가신 아버님께서는 새어머니에 대하여 두번 유언하셨습니다. 한번은 새로운 살길을 열어주라 하셨고, 한번은 순장하라 하셨습니다. 나는 마지막 유언이 진짜 유언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신이 혼미하실 때 하신 유언보다 맑았을 때 유언이 진정한 아버님의 뜻이라 확신합니다.”

이렇게 생사의 갈림길에서 위무자의 애첩은 살아남았다. 장남 위과가 진나라의 새 군주가 되었다. 위과가 홀아비가 된 자신의 호위무사와 과부가 된 아버지의 애첩을 혼인시키자 하늘처럼 받들던 왕비를 새 부인으로 얻은 호위무사는 감격하여 부인을 왕비처럼 받들었다.

춘추전국시대는 중국이 수많은 나라로 쪼개져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다. 세를 불린 진(秦)나라가 이웃 진(晉)나라를 호시탐탐 노렸다. 두 나라가 맞닿은 국경 가까이에 청초파(靑草坡)라는 좁은 협곡이 뚫려 있었다. 이 협곡 바닥은 수크령이라는 질긴 잡초로 덮여 있었다.

진(秦)과 진(晉) 사이에 전운이 감돌 때 노부부가 청초파 협곡에서 콩밭을 매듯이 종일 엎드려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마침내 진(秦)나라는 천하의 맹장 두회(杜回)를 앞세워 진(晉)나라로 쳐들어왔다. 파죽지세, 흑마를 타고 칼춤을 추며 진격해오는 진(秦)나라의 노도와 같은 군대를 막아낼 방법이 없었다. 어젯밤 꿈속에 나타난 노인의 한마디가 떠올랐다. 후퇴를 거듭하자 적장 두회는 기고만장하게 앞뒤 가리지 않고 추격해왔다.

위과는 도망칠 때 청초파 협곡에서 서쪽 절벽에 바짝 붙어 조심스럽게 후퇴했지만 추격해오는 두회는 꺼릴 게 없어 한복판을 내달려 채찍질했다. 바로 그때, 두회의 흑마가 고꾸라지고 두회도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두회의 부하들 말도 바닥에 처박혀 일어날 줄 몰랐다. 위과는 두회와 그의 군졸들을 묶어 승전고를 울리며 진(晉)나라로 돌아왔다.

청초파 협곡에서 왜 두회와 그의 부하들 말들이 줄줄이 바닥에 고꾸라졌는지 위과와 호위무사들이 살펴본즉 놀라운 일이 밝혀졌다. 질긴 수크령을 서로 묶어 놓아 말굽이 걸려서 넘어진 것이다. 몇날 며칠을 두고 수크령을 묶은 노부부는 바로 위무자의 애첩 부모였다. 풀을 엮어 은혜를 갚은 바로 결초보은(結草報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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