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부안 ‘곰소 젓갈 백반’ 음식 감칠맛 올리는 ‘신스틸러’ 곰소항 일대선 주요 반찬 대접 천혜의 환경 … 14종류 상 올라 전국 미식가 발길 끄는 별미로
자타공인 흰쌀밥과 최고의 궁합을 자랑하는 밥도둑은 젓갈이다. 늘상 다른 음식의 감칠맛을 올려주는 ‘신스틸러(Scene stealer·주연 못지않게 주목받는 조연)’ 역할을 도맡는다. 이런 젓갈도 전북 부안군 진서면 곰소항 일대에서만큼은 당당히 주인공으로 나선다. 10여가지 젓갈이 한상 가득 나오는 ‘곰소 젓갈 백반’은 이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별미다.
부안은 곰삭은 젓갈 맛을 내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췄다. 우선 우리나라 3대 어장 중 하나인 ‘칠산 어장’과 맞닿아 있다. 갖은 해산물이 나는 황금어장을 끼고 있어 이를 활용한 다양한 요리법이 발달했다. 천일염 생산지 곰소염전도 젓갈 만드는 데 한몫한다. 지형 특성상 다른 곳에서 난 소금보다 미네랄 함량이 풍부하고, 쓴맛이 거의 나지 않는다.
1년 이상 간수를 뺀 소금에 버무린 싱싱한 해산물은 변산반도 골바람(낮 동안 햇볕에 가열된 골짜기 부근 공기가 위로 올라가며 부는 바람)과 서해 낙조를 받으며 전통 재래방식으로 천천히 숙성된다. 이렇게 만든 젓갈은 다른 지역보다 덜 짜고 담백한 것이 특징이다.
여러 문헌에 따르면 이곳에서 젓갈을 만들기 시작한 건 고려시대부터다. 당시엔 그물을 쳤다 하면 끌려오는 조기를 말리고 염장해 가공품을 만들었다. 매콤하게 각종 양념장을 넣어 반찬으로 먹기 좋은 젓갈을 만들기 시작한 건 1960년대 지나서다. 이젠 명성이 전국으로 퍼져 매년 ‘부안 곰소 젓갈 축제’로 관광객을 맞이한다. 올해는 10월6일부터 8일까지 진행하는데 곰소 젓갈을 활용한 요리 배우기, 새우젓 담그기 행사 등이 마련된다.
곰소항을 거닐다보면 눈에 들어오는 모든 간판이 젓갈 판매장이다. 130여곳 가게 중 가장 먼저 이곳에 들어서 97년째 영업을 이어오고 있는 ‘곰소궁 삼대 젓갈’ 식당을 찾았다. 이곳은 젓갈 백반이 단일 메뉴다.
자리를 잡자마자 상 위에 14가지 젓갈이 끝없이 등장한다. 어리굴젓, 오징어젓, 꼴뚜기젓, 가리비젓, 통낙지젓, 비빔낙지젓, 창난젓, 명란젓, 오젓, 청어알젓, 갈치속젓, 토하젓, 멍게젓, 황석어젓이다. 무말랭이와 견과류 볶음, 묵은지와 깻잎장아찌까지 구성이 알차다.
종류가 많아 젓가락을 어디서부터 대야 할지 모르겠다면 우선 가리비젓으로 시작해보자. 오독오독 조갯살이 씹히면서 끝맛은 달큼하다. 토하젓 역시 은은한 단맛이 나 입문자가 시도하기 좋다. 차진 밥을 한술 뜨고 이번엔 큼직한 꼴뚜기젓을 올려본다. 꼴뚜기 한마리가 통째로 들어가 씹는 맛이 있다. 생각보다 비린 맛이 거의 없고 매콤함이 적당하다.
식당을 삼대째 운영하고 있는 오덕록 대표(70)가 “맛있게 먹는 비법은 참기름 한방울 넣은 명란젓에 미역과 다진 마늘을 넣고 비빈 후 비빔 낙지젓을 섞어 먹는 것”이라며 “바다향이 물씬 나는 멍게젓이나 젓갈의 진수를 보여주는 황석어젓은 곰삭은 맛이 짙게 나 제일 마지막에 먹는 걸 추천한다”고 말했다.
곰소 젓갈은 예로부터 어민들이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매일같이 만들어 먹던 친근한 밑반찬이다. 이젠 귀한 맛을 알아보는 전국 미식가들이 먼 걸음을 해 찾아 먹는 별미가 됐다. 다가올 추석 연휴 땐 가을 바다를 감상하며 곰소 젓갈 맛에 빠져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부안=서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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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부안군 진서면 곰소항 ‘곰소궁 삼대 젓갈’ 식당에선 14가지 젓갈이 한상으로 나온다. 비빔낙지젓과 참기름 뿌린 명란젓을 흰쌀밥에 올려 먹으면 궁합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