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읽기] 달 탐사 경쟁과 ‘퍼스트맨’
입력 : 2023-09-27 17:20
수정 : 2023-09-27 17:20

백남준이 1965년에 선보인 ‘달은 가장 오래된 TV’는 초승달부터 보름달까지 달의 이미지를 12대의 모니터에 담은 비디오아트다. TV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 사람들은 달을 보고 자연의 섭리를 깨쳤을 테고, 지구 너머의 세계에 대한 꿈을 품었을 것이다. 여전히 달은 신비로운 대상이지만 머지않아 신비의 베일도 벗겨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각국의 달 탐사 경쟁이 뜨겁다. 8월23일엔 인도의 달 탐사선 찬드라얀 3호가 세계 최초로 달 남극 착륙에 성공했다. 비록 한달만에 탐사선과 탐사 로봇이 혹독한 밤을 견디지 못하고 달의 남극에서 잠들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지만, 우주 경쟁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라라랜드’를 만든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영화 ‘퍼스트맨’(사진)은 1969년 7월20일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닐 암스트롱을 주인공으로 삼아 인류의 위대한 도약이 있기까지 어떤 수많은 시도와 실패와 희생이 따랐는지를 보여준다. 미국의 유인 우주 계획인 제미니 프로젝트에 참여할 우주비행사 선발 면접에서 닐 암스트롱은 이런 질문을 받는다.

“왜 우주 비행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그는 답한다.

“어느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우리의 관점은 달라진다. (우주 비행은) 우리가 오래전에 봤어야 했으나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볼 기회가 될 것이다.”

칼 세이건이 말했듯 ‘창백한 푸른 점’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 우주적 시선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와 상통한다. 본격적인 달 탐사는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의 군사력 경쟁에서 비롯됐고 최근엔 우주 경제 개발의 차원에서 경쟁이 가속화하는 모양새지만, 닐 암스트롱의 저 대답이야말로 우리가 우주로 향하는 이유여야 하지 않을까.

1960년대 미국에선 흑인 인권 운동이 뜨거웠다. 우주 개발에 천문학적인 세금이 들어가는 상황에서 누군가는 ‘왜 그렇게 달에 가는 게 중요한지’ 의문을 제기한다. 흑인들은 거리에서 외친다. 인종차별과 가난을 해결하는 것보다 백인을 달에 보내는 게 더 중요한가? 영화는 이런 목소리들을 회피하지 않으면서, 왜 인류의 달 착륙이 위대한 도약이었는지 본질적 이유에 집중하고자 한다. 그래서 영화 속 닐 암스트롱은 애국적 사명감을 지닌 영웅이라기보다 죽음 너머의 삶에 대한 의미를 찾고자 한 고독한 인간으로 그려진다.

한편 ‘퍼스트맨’과 쌍으로 보기 좋은 ‘히든 피겨스’는 백인 남성 우주비행사들을 달에 보내는 과정에는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으나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았던 흑인 여성들의 혁혁한 기여가 있었음을 이야기한다. 미국의 달 탐사 프로젝트 아르테미스 계획에 따르면 2024년에 발사될 탐사선엔 최초로 여성 우주비행사와 흑인 우주비행사가 탑승할 예정이다. 반세기만에 인류는 또 다른 위대한 도약을 이뤄낼 수 있을까.

이주현 씨네21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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