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도 높은’ 공공형 계절근로 … ‘인건비 부담’이 발목
입력 : 2023-08-29 10:59
수정 : 2023-08-29 11:12
농가, 사용 일수만큼 일당 입금 
농협이 근로자에 월급으로 지급 
주휴수당 등 영향 금액 차이 커 
수천만원 손실 고스란히 떠안아 
별도 보전·일당제 전환 등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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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형 계절근로는 농가 만족도가 높지만 농협이 근로자 인건비와 관련된 손실을 오롯이 감수해야 하는 현재의 구조에서는 더이상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정부가 내년에 공공형 계절근로 사업을 대폭 확대할 계획인 가운데, 올해 이 사업에 참여한 지역농협들은 근로자 인건비에 대해 “농가가 농협에 입금하는 금액과 농협이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금액 차이가 너무 커 손실이 눈덩이처럼 늘어났다”며 “이를 보전해주는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시범사업에 이어 올해 지자체(지역농협) 19곳이 참여하고 있는 공공형 계절근로는 독특한 제도다. 지자체가 외국 현지 지자체와 업무협약을 체결해 근로자를 확보하면, 지역농협이 이들과 고용 계약을 맺어 농가에 공급하는 방식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농협당 사업비 6500만원을 지원한다. 사업비는 관리 인력 인건비와 근로자 출퇴근 운송비 등 운영비로만 사용할 수 있다.

이 제도는 농가가 근로자를 직접 관리할 필요가 없는 데다 원하는 날에만 일손을 쓸 수 있는 등 여러 장점이 있다. 근로자 인건비를 최저임금 수준에 맞추다보니 지역에서 외국인 근로자의 무분별한 임금 상승을 억제하는 ‘견제 기능’도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심지어 불법체류자를 포함한 기존 외국인 근로자가 계절근로자를 의식해 일을 평소보다 열심히 하게 하는 효과도 목격된다.

문제는 인건비 지급 방식이다. 근로자가 농가에서 일을 마치면 농가는 농협에 해당 근로자 인건비를 일당 형태로 입금하고, 농협은 이를 모아 근로자에게 월급으로 지급한다. 그런데 농가는 근로자를 사용한 일수만큼만 인건비를 입금하지만, 농협은 근로자를 직원 형태로 채용했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에 따라 ‘주휴수당’을 포함해 정해진 액수를 지급해야 한다.

근로자가 한달(평일 21일 기준) 일했을 경우 농협이 농가에서 받는 인건비는 약 168만원(일당 8만원 기준)이지만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월급은 약 201만원이나 된다. 이에 따라 농협이 1인당 한달에 30만원가량을 고스란히 손해 보는 셈이다. 게다가 비가 오거나 일이 없어 근로자가 쉴 경우 손실액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올 3∼8월 5개월간 공공형 계절근로자 33명을 고용했던 충남 논산 연무농협(조합장 최용재)의 경우 이런 식으로 인건비로만 약 6000만원의 손실을 입었다. 올 2월말부터 38명을 고용했던 부여 세도농협(조합장 조남엽)도 인건비로만 5000만원가량의 손실이 발생해 상황은 비슷하다.

그나마 세도농협은 부여군이 사업비 외에 1억원을 지원해 손실액을 1500만원까지 낮출 수 있었다. 하지만 세도농협이 사업 관리 인력을 별도로 채용하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손실액은 연무농협과 비슷한 수준일 것으로 추정된다.

경북지역은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서의성농협(조합장 임탁)은 올해 25명으로 공공형 계절근로 사업을 시작했는데 손실액이 무려 1억5000만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농가에서 받는 근로자 인건비와 농협이 지급하는 인건비 간의 ‘불일치’에다 유난히 길었던 장마로 농작업을 못한 날이 많았기 때문이다.

새의성농협(조합자 이재섭)도 마찬가지다. 이재섭 조합장은 “가장 큰 문제는 결국 인건비”라며 “올해는 장마가 길어 7월의 경우 근로자가 일한 날이 손꼽을 정도로 며칠 안되지만 월급 형태로 인건비는 모두 지급했다. 이대로 가면 5개월 계약 기간 동안 손실액은 1억5000만원에서 최대 2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농협들은 사업비를 크게 증액하되 사업비로 인건비 손실분을 보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양보승 연무농협 상무는 “수천만원씩 손실이 나는 사업을 계속 끌고갈 농촌농협은 없다”며 “사업비 사용 항목에 인건비 손실을 보전하는 조항을 포함시키든지 아니면 별도의 보전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여군처럼 지자체가 적극 나서 지원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여군은 세도농협에 1억원을 지원하고 있는데 이런 지원을 하는 지자체는 많지 않다. 이재섭 조합장은 “지자체 지원이나 사업 보완이 없다면 이 사업을 계속하긴 어렵다”고 힘줘 말했다.

월급제인 인건비 지급 방식을 일한 날에만 돈을 주는 일당제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거세다. 신영문 서의성농협 전무는 “현재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선 월급제가 아닌 일당제로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기상 조건 등으로 근로자가 농가에서 일을 못할 땐 농협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 등에 투입할 수 있도록 근로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내년에 공공형 계절근로 사업을 시행하는 지자체와 지역농협을 대폭 늘리고 사업비도 증액할 계획이지만, 사업비로 인건비 손실분을 보전하는 방안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근로자가 일을 쉬어 인건비 손실이 생기지 않도록 가동률을 높이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논산·부여=서륜, 의성=유건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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