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원상회복 수년 걸릴지도 … 피해 보상 안갯속
입력 : 2023-08-22 17:58
수정 : 2023-08-25 11:00
감천면 벌방리 
이재민용 임시주택 건설 한창 

“마음의 상처 영원히 남을 듯” 

효자면 백석리 
사과밭, 과실 남아 복구 못해 

“정부·지자체 지속적 관심 필요”

☞ 1면에서 이어짐

임시 거주시설 설치 현장에 있던 담당 공무원은 “길게는 2년간 머물 수 있고, 입주 가구엔 전기요금 감면 같은 혜택을 준다”면서 “특히 벌방리는 장기적으로 안전한 곳에 택지를 조성해 피해 가구와 위험지역에 사는 주민을 모두 이주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7월15일 새벽 급류에 휩쓸려가다 나무 기둥을 잡고 버텨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김종태 어르신(85)은 노인회관 생활이 불편해 임시로 복구한 집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김 어르신은 “사고 당시 쌀·소금·고추 등을 가득 넣어놓은 창고가 떠내려갔고, 집 안은 아직도 눅눅하고 곰팡이가 곳곳에 생겼다”면서 “베란다에서 생수로 밥을 지어 먹어 불편하지만 내 집이라 마음은 편하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김 어르신은 “당시 몸에 생긴 상처는 점점 아물고 있어도, 마음의 상처는 영원히 남을 것 같다”면서 “임시 거주시설로 거처를 옮긴다고 해도 2년 후엔 다시 돌아와야 하니 노구를 이끌고 도대체 몇번을 이사해야 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마을 주민 5명이 목숨을 잃었던 예천군 효자면 백석리 상백마을. 14일 오후에 찾은 상백마을에선 대형 덤프트럭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연신 토사를 실어 날랐다.

은풍면에서 효자면 백석리로 이어지는 지방도는 집중호우 당시 2곳이 급류에 유실되면서 오랫동안 제 기능을 못하다 최근 응급복구를 마치며 마을로 접근하기가 다소 쉬워졌다. 도로를 따라 흐르는 ‘한천’ 곳곳엔 톤백 포대에 흙을 담아 임시로 쌓아놓은 제방이 물난리의 규모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가늠하게 해줬다.

한천 제방을 따라 형성된 일부 농경지는 모래와 자갈로 덮여 있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모래밭 중간중간에 자라는 벼를 보고서야 이곳이 논이었다는 것을 겨우 짐작할 수 있었다.

백석리마을회관에서 상백마을까지 이어지는 좁은 길은 폭우로 곳곳이 유실됐고 차량 통행이 불가능해 응급복구가 더뎠었다. 사고 당일엔 소형 굴착기 한대만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폭이 좁았다.

7월말 도로 복구를 마친 후 이달초 안전진단을 거쳐 7일부터는 대형 덤프트럭 통행이 허용됐다. 복구 작업이 속도를 내다 제6호 태풍 ‘카눈’이 관통하던 9∼10일엔 전면 중단되기도 했다.

황보성 백석리 이장은 “폐기물과 토사를 완전히 치워내면 이달말까지는 상백마을에 가로등 설치와 함께 통신시설도 복구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통행로가 비좁다보니 작업이 생각만큼 빠르진 않다”고 했다.

마을 주민 신종분씨(64)는 “7월15일 새벽 농기계와 창고가 통째로 쓸려갔고, 사과밭은 탄저병이 번지고 나뭇잎도 다 떨어져 형편 없다”며 “급한 대로 농기계를 사들여 방제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라며 고개를 떨궜다. 황보 이장은 “마을이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려면 수년이 걸릴지 모른다”면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간시설과 주택은 복구에 속도가 붙고 있지만 농경지와 농작물은 상대적으로 속도가 더디다.

4958㎡(1500평) 규모로 사과농사를 짓는 이성환 어르신(78·백석리)은 “과원 중간이 유실되면서 100여그루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면서 “하지만 남아 있는 과원엔 ‘홍로’와 ‘후지’가 달려 있어 대형 굴착기를 동원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고, 수확을 마치고서야 유실된 곳을 돌볼 수 있을 것”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9917㎡(3000평)에서 사과를 키우는 권봉기 어르신(78·은풍면 은산리)은 “행정기관에서 피해 조사를 해 갔지만 얼마를 보상해주는지, 수확 후에 복구해도 보상해주는지 명확히 알 수 없어 갑갑하다”고 말했다.

안교선 어르신(88)은 “1818㎡(550평) 과수원이 형체도 없이 사라지고 모래밭으로 변했다”면서 “지난주에 대형 굴착기가 들어와 사과나무만 걷어 갔고 돌덩이와 자갈·모래는 아직 그대로 있어 언제 치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예천=유건연 기자

=CAPTION=
이재민 임시 대피시설인 노인회관에서 생활하고 있는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 주민들.
벌방리 입구에는 집이 완파·반파된 이재민을 위한 임시 숙소 설치공사가 한창이다.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