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각 많은 다리 ‘물막이 둑’ 역할, 번번이 침수 초래
입력 : 2023-08-22 16:44
수정 : 2023-08-23 05:00
고성 배봉리, 20년 넘긴 배봉교 

호우 땐 쓰레기 걸려 하천 범람 

군청에 민원 넣어도 해결 안돼 

“신식 공법으로 다리 세워달라”

“우리 마을과 농경지를 이어주는 참 고마운 다리죠. 하지만 큰비만 왔다 하면 번번이 마을 침수를 초래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강원 고성군 현내면 배봉리. 휴전선까지 거리가 10㎞ 남짓에 불과한 최전방 마을인 이곳에서 쌀과 감자·무시래기 등 복합영농을 하는 김조국 이장(56)은 비 소식만 들리면 초긴장 상태가 된다. 2001년 준공된 배봉교 교각이 자주 물길을 막아 강물과 계곡물이 금세 불어나다보니, 마을 하천인 배봉천이 범람해 마을에 물이 들어차는 피해를 보고 있어서다. 최근 제6호 태풍 ‘카눈’이 북상했을 때도 집중호우를 이기지 못하고 배봉천이 넘쳐 주택 일부가 잠기고 논밭이 그때마다 침수 피해를 봤다.

인근에서 만난 주민 임기남씨(80)는 하천이 범람하던 날, 살림집에 강물이 밀려오던 순간만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벌렁거린다. 임씨는 “결국 지하창고에 보관하던 각종 세간살이는 모두 물에 흠뻑 젖어 무용지물이 됐다”며 “애지중지 키워온 들깨도 모두 쑥대밭이 돼 수확에 나선다 해도 소출이 눈에 띄게 줄 게 뻔하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김 이장은 배봉교 교각이 유독 많다는 점을 침수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했다. 총연장 51m인 배봉교에 설치된 교각은 모두 10개. 그러다보니 교각과 교각 사이 물길폭이 고작 4m가량으로 설계됐다. 김 이장에 따르면 비가 많이 올 땐 하천을 따라 흐르던 나뭇가지나 생활쓰레기가 교각에 걸려 엉겨 붙고 결국 다리가 물막이 둑 역할을 하면서 하천 수위가 빠르게 높아져 배봉천 범람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김 이장은 “오래전 세운 다리는 대체로 교각이 많은 게 특징”이라며 “침수 피해뿐 아니라 20년을 훌쩍 넘긴 낡은 교각이 하중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질 우려도 있다”고 하소연했다. 실제로 1989년 준공된 평창군 진부면 송정교(총연장 150m)도 2020년 9월 태풍 ‘마이삭’ 발생 당시 무너졌다. 올해도 경북 영주·예천을 비롯한 집중호우 피해 지역 내 교량 몇개가 붕괴된 바 있다.

김 이장은 “과거에도 서너차례 하천이 범람하거나 범람 직전까지 간 적이 있을 때마다 군청을 찾아가 민원을 제기했지만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답변만 듣고 이마저도 흐지부지됐다”며 “언제까지 이렇게 고통을 받으며 살아야 하는지 답답할 뿐”이라고 고개를 떨궜다.

주민 박상만씨(59)도 “20여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아름다운 우리 마을이 매년 장마철만 되면 다들 스트레스로 밤잠을 설칠 지경”이라며 “그동안 각종 규제와 군부대 소음 등 접경지역의 불편함을 감수하며 묵묵히 농사지어온 만큼, 신식 공법으로 교각을 최소화한 다리를 세워줄 것을 군청에 요구한다”고 말했다.

이는 비단 배봉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올 4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맹성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인천 남동갑)이 국토안전관리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도내엔 모두 1021개의 교량이 있으며 이 중 1980년 이전에 세워진 28개를 포함해 30년 이상 된 교량이 454개로 집계됐다. 이는 도내 전체 교량 숫자 대비 44%에 해당하며 경기(563개), 전남(461개)에 이어 세번째로 많다. 그만큼 도내 시설물·교량 안전이 취약하다는 뜻이다.

한편 고성군 관계자는 “노후 기반시설이 가진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고, 현재 태풍 피해 조사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며 “예산의 한계 때문에 어려움이 많은 만큼 내년도 예산 확보에 최선을 다하고 주민 불편 최소화에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고성=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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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고성군 현내면 배봉리의 김조국 이장이 배봉교 교각에 걸려 엉겨 붙은 나뭇가지를 보여주며 침수 피해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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