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 탄저병 햇볕데임 들끓는병해충 ‘애타는 농심’
입력 : 2023-08-11 17:32
수정 : 2023-08-25 11:00
사과 복숭아고추 등 병해 확산 
방제비도 만만찮아 농민 시름 
증상 심한 작물 빨리 솎아내고 
전용 농약비료 활용 생육 관리
이인찬 경북 영주 풍기농협 조합장(오른쪽)과 사과 재배농민 김영대씨(69)가 탄저병에 걸린 사과를 살펴보고 있다.

긴 장마와 집중호우가 농가에 큰 피해를 주더니 이제는 40℃ 가까운 불볕더위가 계속되자 농작물에 병해충이 들끓으며 농심을 애태우고 있다. 밭작물은 탄저병·무름병 등이 심해져 비상이 걸렸고, 과수는 강한 햇빛이 열매에 직접 닿아 ‘일소(햇볕데임)’ 현상이 확산할 조짐을 보인다. 전문가들은 자주 논밭을 살펴 이상징후를 빨리 파악하는 한편 병해충을 예방할 농약과 비료를 활용해 신속하게 생육 관리에 나서달라고 주문했다.

◆사과·복숭아 주산지, 탄저병과 갈색무늬병에 시달려=“병든 사과를 따내도 따내도 계속 번집니다. 3일마다 약을 치는데도 별도리가 없어요.”

폭우를 동반한 오랜 장마와 바로 이어진 40℃에 육박하는 불볕더위로 농작물이 몸살을 앓고 있다.

사과와 복숭아·자두 같은 과수를 비롯해 고추·배추 등 밭작물에서도 탄저병과 역병·갈색무늬병 등이 심해지는 양상이다.

사과 주산지인 경북 영주 일대 사과원은 탄저균과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6611㎡(2000평) 규모로 사과농사를 짓는 김영대씨(69·봉현면)는 “병과를 매일 따내고 3일에 한번 약을 치는데도 탄저병이 급속히 번진다”면서 “연이은 이상기후로 잔뿌리가 약해진 상태에서 폭염이 일주일 가까이 기승을 부리자 잎이 누렇게 변해 떨어지는 갈색무늬병도 확산 일로”라고 말했다.

이인찬 영주 풍기농협 조합장은 “영주에는 6월말부터 7월말까지 장마 기간 누적 강수량이 654㎜에 이르는 물폭탄이 쏟아졌고 곧바로 30℃를 훌쩍 넘는 불볕더위가 이어지면서 각종 병해충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며 “예년에 비해 방제 횟수를 많이 늘린 농가는 약값만 2∼3배 더 들지만 수확은 장담할 수 없어 시름이 깊다”고 설명했다.

봄철 저온현상에다 폭우·폭염까지 겪은 중부권 복숭아농가도 울상이다. 강정기 세종시 조치원농협 복숭아공선출하회장은 “올해 겨울 최저기온이 영하 24.5℃까지 떨어져 나무 생장에 악영향을 미쳤고 개화기 때는 저온피해가 나 착과량이 급감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남은 물량에도 장마와 폭염 영향으로 세균성구멍병이나 탄저병이 창궐해 올해 생산량은 지난해의 5분의 1토막 수준으로 떨어질 것 같다”며 고개를 떨궜다.

◆고추·배추, 탄저병·무름병으로 골머리=밭작물도 무름병이나 탄저병 같은 병해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다.

충북 괴산에서 1884㎡(570평) 규모로 고추농사를 짓는 장성철씨(67·불정면)는 탄저병과 무름병으로 잎이 누렇게 시들고 검게 썩어들어가는 고추를 살펴보며 연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최근 폭우로 밭 전체가 물에 잠겼는데 3일 만에 와보니 이미 탄저병과 무름병이 심각하게 퍼져버렸다”면서 “2∼3일마다 방제약을 치고 있는데 약값마저 부담스러워 앞으로 어떻게 영농활동을 해야 할지 갑갑하다”며 말끝을 흐렸다.

경북 안동의 고추농가 김영학씨(62·서후면)도 “장마가 끝나자마자 30℃에 육박하는 불볕더위가 바로 이어지면서 탄저병이 심하다”며 “지금까지 방제비만 지난해보다 20% 이상 더 들었다”고 토로했다.

국내 고랭지배추 주산지인 강원 태백지역도 배추 생육이 부진한 데다 장마 직후 불볕더위가 지속돼 병해가 확산하고 있다.

배추농가 김창우씨(56·황지동)는 “장마철 내내 작물이 햇빛을 못 본 데다 약제를 뿌려도 빗물에 씻겨 내려갔다”며 “이후 기온이 크게 올라 밭 곳곳에서 무름병이 생기며 배추가 망가지기 시작했다”고 울상을 지었다.

태백농협에 따르면 110㏊(33만평)에 달하는 매봉산 배추밭 가운데 현재 20%가량에서 무름병이 발생했다. 김상호 태백농협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 팀장은 “앞으로 30℃ 넘는 고온이 지속되면 피해면적이 30% 이상으로 늘어나 단수와 생산량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면서 “피해를 줄이려 흑백필름으로 멀칭해 배추 뿌리 쪽 온도를 낮추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남부지역은 벼 도열병이 기승을 부린다. 곰팡이병인 벼 도열병은 전 생육 기간에 걸쳐 발병해 피해를 주며 발병 부위에 따라 잎도열병·이삭도열병 등으로 구분한다. 벼잎도열병은 높은 기온과 습도, 일조 부족 등의 환경에서 발생하기 쉽다. 잎도열병을 적절히 방제하지 못하면 이삭도열병으로 이어져 피해가 급증할 우려가 있다.

특히 경남 전역에서 많이 재배되고 있는 ‘영호진미’ 품종은 잎도열병에 취약해 농가의 주의가 필요하다. 고성에서는 벼애나방이 출현했다. 벼애나방은 낮에는 포기 사이에 숨어 있다가 밤에 활동하는 야행성이다.

유충이 잎을 가장자리부터 통째로 갉아 먹어 출수기(이삭이 나오는 시기)를 전후해 피해를 키운다.

◆폭염 당분간 지속…햇볕데임 과일은 빨리 솎아야=이달말까지 폭염이 이어질 것이라는 예보에 따라 과수농가는 햇볕데임 예방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게 전문가 지적이다.

특히 봉지를 씌우지 않는 사과나 단감이 취약하다. 먼저 뿌리가 자리 잡은 주변 토양에 물이 차지 않도록 물길을 정비하는 것이 좋다. 또 미세살수 장치나 햇빛 가림막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나뭇가지를 끌어당겨 잎으로 열매를 가리는 방법도 유용하다.

조은희 농촌진흥청 기술보급과장은 “200배액으로 희석한 탄산칼슘을 햇볕에 노출된 열매를 중심으로 뿌려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면서 “증상이 심각한 열매는 빨리 솎아야 병해가 다른 열매로 번지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배추는 무름병과 칼슘 결핍에 신경 써야 한다. 무름병이 생긴 배추는 고약한 냄새가 나므로 병을 확인한 직후 해당 식물체를 제거하고 전용 약제로 방제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칼슘 결핍을 예방하려면 칼슘 성분을 함유한 비료를 물에 녹여 3∼4일 간격으로 약 4회에 걸쳐 잎에 고루 뿌려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 생육이 좋지 못한 고추밭은 요소액이나 제4종 복합비료를 5∼7일 간격으로 2∼3회 뿌려주면 세력을 회복하는 데 효과가 있다.

강원=양재미디어 기자 yjmedia@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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