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호우로 농촌 곳곳 쑥대밭 농작물재해보험 가입은 저조 재해복구비도 저단가 등 문제 농산물값 하락에 생산비 급등 농가 직격탄 … 안전망은 부재 농업계 “수해 계기로 보완해야” 정부·정치권, 대안 모색 급선무
농산물 가격 하락과 생산비 상승에 최근 이상기후로 인한 재해까지 겹치면서 농가가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이런 위협요소로부터 농가경영을 보호할 안전장치를 서둘러 보강하지 않는다면 우리농업의 지속가능성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최근 수해로 농촌이 쑥대밭이 됐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집중호우로 26일 기준 농작물 3만6252㏊, 시설 61.2㏊, 가축 92만9000마리 규모의 피해가 났다. 농민들은 당장 생산기반이 물에 잠겼을 뿐 아니라 농산물 품위 저하와 생산량 감소에 따른 소득 하락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하지만 기댈 만한 정책은 제한적이다. 재해에 따른 농작물 생산량 감소를 보상하는 농작물재해보험이 있긴 하지만 농가 가입률이 5월 기준 10.8%로 저조하고 가입 대상이 아닌 품목도 많다. 대파대와 농약대 등 정부가 지원하는 재해복구비는 낮은 단가와 농가가 일부 자부담하는 구조 등이 꾸준히 문제로 지적된다.
문제는 재해 외에 농산물 가격 하락과 생산비 상승에 따른 안전망은 사실상 부재한 탓에 농가의 기초체력이 이미 많이 약해졌다는 점이다. 최근 ‘양곡관리법 개정 논란’과 ‘30년 전으로 회귀한 농업소득’은 각각 농산물 가격 하락과 생산비 급등에 대한 완충장치가 취약하다는 점을 증명한 ‘사건’들이었다. 임소영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경영위험관리정책은 시장격리 등 사전적 조치 위주고, 사후 조치는 생산량 감소에 대응한 농업재해보험이 운영될 뿐 수입이나 소득 변동에 따른 위험관리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우리 실정은 농가경영 안정제도가 다층적으로 운영되는 선진국과 차이가 두드러진다. 미국은 20여개에 달하는 농업정책보험뿐 아니라 가격 변동에 대응하는 가격손실보상제도(PLC)와 수입 악화에 대응하는 농업위험보상제도(ARC)를 운영한다. 일본은 대규모 손실을 보상하는 농업경영수입보험과 함께 쌀·보리·콩 등에 대해선 수입액이 기준액에 못 미치면 차액의 90%를 보전하는 농업수입감소영향 완화대책도 추가로 펼친다.
이에 농업계에선 이번 수해를 계기로 우리의 농가경영 안전망도 보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낸다. 특히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수해 현장을 찾아 농촌 실상을 목도하고 대안 마련을 주문한 점을 기회로 삼자는 의견이 제기된다.
최범진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정책조정실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17∼18일 연이틀 수해 현장을 찾아 신속한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면서 “당장 피해 복구도 중요하지만 각종 불확실성 속에서도 안심하고 농사지을 수 있도록 농가경영 안전망 확충을 위한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관건은 정부·여당의 의지다. 정부가 농가경영 안정방안으로 제시한 ‘농업수입보장보험 확대’가 실제 농가 수입 파악의 어려움으로 단기간 성취가 요원한 가운데 여당은 ‘정부를 믿어보자’면서 다소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어 야당이 내놓는 ‘한국형 PLC’ 등도 탄력을 받기 쉽지 않은 상태다.
이정환 GS&J 인스티튜트 이사장은 “최근 농산물 가격이 올라도 농사를 포기하는 농가가 늘어나는 현상이 관찰되는데 경영안전망이 확충되지 않으면 농업 이탈이 가속화할 수 있다”면서 “시장격리 강화가 부작용 우려로 벽에 부딪힌 가운데 정부와 정치권이 머리를 맞대 새 대안을 서둘러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석훈 기자 shakun@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