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점점 줄어드는 공중보건의…농촌 의료 공백 어쩌나(상)실태
입력 : 2023-07-19 17:26
수정 : 2023-07-19 17:26
신규 공보의 배치됐지만 농어촌지역 의료공백 여전
적지않은 면단위 보건지소, 공보의 없어서 요일별 순회진료
약국도 없는 면단위 마을은 보건지소가 유일한 의료대안인데

의료복지 체계가 취약한 농촌지역 보건소나 보건지소에 근무하는 공중보건의(이하 공보의)가 해마다 줄면서 의료 공백이 현실화하고 있다. 농어촌 산간벽지의 의료를 책임지는 공보의의 배치 감소로 진료가 중단되거나 요일별로 나눠서 순회진료를 해야만 하는 보건지소가 적지 않다. 공보의 자리가 빈 농촌지역 주민들은 원정 진료를 받으러 가야 하는 등 불편과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같은 공보의 부족 현상이 갈수록 심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에 공보의 부족에 따른 농촌지역 의료 실태와 원인 그리고 대책을 3회에 걸쳐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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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 한 보건지소는 공중보건의 부족으로 지소장이 부재중이어서 진료에 차질을 빚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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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면 몸 여기저기가 수시로 고장 나기 마련인데 이제 우리 동네 보건지소에 공중보건의(이하 공보의)가 없다고 하니, 어디 마음대로 아프지도 못하겠네. 이러다 머지않아 보건소 자체가 없어지는 건 아닌가 몰러.”

3월말 전국 공보의가 대거 전역한 뒤 빚어졌던 의료 공백 사태는 4월 중순 공보의가 재배치되면서 일단락됐다. 하지만 여전히 의료서비스 공백이 해소되지 않은 지역이 전국 곳곳에 남아 있어 농촌지역 주민은 불편함과 불안함을 호소했다.

의료서비스 공백이 해소되지 않은 지역은 대부분 면 단위다. 상주하는 공보의가 없고 몇개의 보건지소를 묶어서 순회진료하는 식으로 운영해 정해진 요일이나 시간 외에는 진료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실례로 전남 영암군 학산보건지소는 보건소 입구에 진료안내문을 게시하고 “공중보건의사 부족으로 일반진료, 예방접종은 매주 화요일·목요일만 가능하다”고 공지했다. 영암군에는 보건지소가 10개 있지만 보건지소에 상주하는 공보의는 단 2명에 불과해 요일별로 순회진료에 나선다. 

의사가 부족한 탓에 농촌지역에선 순회진료는 필수가 됐다. 전북 고창에선 심원보건지소 소속 공보의가 월·수·금을 이곳에서 진료하고 화·목은 해리면 통합보건지소로 순회진료를 나간다. 해리면 통합보건지소에 공보의가 부족한 탓이다. 장수군 계남보건지소도 공보의가 최근 제대한 후 필요한 인원을 배정받지 못해서 공석이다. 인근 4개 지소 공중보건의가 화·수·목·금요일에 돌아가면서 계남보건지소에서 진료하고 월요일에는 의과 진료를 휴진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강원 강릉시는 올해 사천·성산면 보건지소에 공보의를 배정받지 못했다. 이에 사천보건지소엔 인근 강동보건지소 소속 공보의가 주 2회, 성산보건지소엔 인근 왕산보건지소 소속 공보의가 주 2회 찾아와 의료 업무를 봐야 한다. 홍천군도 8개 보건지소 중 남면·서석면·영귀미면 등 3개 면에 공보의가 배치되지 못해 정상적인 진료가 이뤄지지 않는다.

이처럼 지역 보건지소 곳곳에서 순회진료·제한진료가 이뤄지는 것은 공보의 수가 해마다 줄고 있어서다. 전남은 2019년 645명에서 올해 586명으로 5년 새 62명이 줄었다. 전북은 올 3월 146명이 전역했지만 4월에 111명만 채워지면서 36명이 감소했다. 강원 역시 지난해 배치된 공보의는 130명이었으나 올해는 101명에 그쳤다.

더 큰 문제는 의과 공보의 수가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건지소에서는 내과 진료와 투약지도 등 일반진료를 담당할 의과 공보의가 많이 필요한데 정작 지역에 배치되는 공보의 가운데 의과가 차지하는 비중은 해마다 줄었다. 전국 대부분 시·군에서 순회진료 제도를 운영하는 것도 의과 공보의 부족에서 기인한다. 반면 한의과와 치과 쪽은 공보의 숫자가 매년 비슷하거나 증가세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한의과와 치과는 지난해와 견줘 각각 43명, 48명이 증가했지만 의과는 오히려 278명이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적으로 공보의 수는 2019년 3540명에서 올해 3176명으로 10%가량 줄었지만 같은 기간 의과 공보의 수는 1960명에서 1434명으로 27% 감소했다. 전체 공보의 가운데 의과가 차지하는 비율도 같은 기간 55%에서 45%로 10%포인트 줄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도서지역 등 의료 취약지에 공보의를 먼저 배치하고 찾아가는 이동보건소를 운영하는 등 다양한 대응 방안을 내놨다. 

제주도는 공보의 감소에 따른 의료 공백을 최소화하고자 상대적으로 의료서비스 접근이 쉬운 동(洞) 단위 지역에 배치 인원을 줄였다. 실제 도는 제주시 아라1동의 제주의료원과 서귀포시 동홍동의 서귀포의료원 공보의 인원을 이전보다 각각 1명씩 감축했다.

김남용 도 보건정책팀장은 “일반 병의원이 많은 도심지역 공보의 수를 조정함으로써 공보의 진료 의존도가 높은 읍·면 지역 의료서비스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조치했다”고 말했다. 

이런 노력에도 공보의 부족에 따른 농촌지역 주민의 불편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에 살다가 3년 전 전북으로 귀농한 이모씨는 “농촌에서 지내보니 불편한 사항이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이 가운데 공공진료 서비스가 너무 엉망”이라며 “순회진료로 진료받으러 갔다 헛걸음한 게 여러번인데, 노인들은 운전해서 다른 병원이나 보건지소로 찾아갈 수도 없어 아파도 제때 치료를 받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전남 무안군 몽탄면에 거주하는 박모씨도 “우리 지역에는 병원이나 의원은커녕 약국 하나도 없어서 보건지소에서 진료를 못 받고 약을 타지 못하면 치료할 길이 없다”면서 “젊은 사람들이야 차를 가지고 읍내로 가면 되지만 어르신은 차도 없고 버스도 하루에 몇대 없으니 아파도 무조건 견뎌야 하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급기야 주민끼리 자구책을 세우는 상황까지 벌어진다. 감기약이나 진통제 같은 약은 한번씩 읍내나 인근 도시의 큰 병원에 갈 때 처방을 넉넉하게 받아와서 상비약처럼 집에 보관하거나 이웃끼리 나눠 먹기도 하는 일명 ‘약 품앗이’를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약 품앗이는 오히려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어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 의학 전문가들의 견해다. 개인마다 몸 상태나 기저질환 같은 조건이 달라 부작용이 생길 수 있어 다른 사람이 처방받은 약을 먹는 것은 피해야 한다. 

좀처럼 상황이 개선되지 않자 농촌지역 주민들은 “도농간 의료복지 격차가 갈수록 커진다”며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전북 고창의 한 주민은 “그나마 농촌에서 병원을 대신하던 보건지소가 없어지기라도 한다면 농촌에 사는 것은 더 불편하고 어려워질 것”이라며 “농촌에 산다고 기본적인 복지조차 누리지 못한다면 누가 농촌에 살러 오겠나”고 반문했다. 

강원 홍천에 사는 김모 할아버지(81)는 “지역 의료의 보루 역할을 했던 공보의가 없어지면서 개인병원이 적은 농촌지역 주민의 불안감은 더욱 커진 상황”이라며 “의료진 부족은 어제오늘 문제가 아닌 만큼 정부가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충북 보은에 사는 신기수 이장(63·내북면 아곡리)은 “요일 개념이 밝지 않은 어르신들이 무심코 보건지소를 방문했다 제대로 진료받지 못하고 헛걸음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의사가 없는 날에 갑자기 중병이 찾아오기라도 하면 20여분 버스를 타고 보은읍으로 나가야 하는데 병원에 도착하기 전 자칫 목숨을 잃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민들과 자주 만나는 공중보건의는 지역 주치의 역할을 하는 만큼 농촌에 충분한 인원이 보강되도록 정부가 빨리 손을 써야 한다”고 역설했다. 

<전국 공중보건의 복무현황 - 보건복지부>

연도 공보의 의과 한의과 치과
2019 3540 1960 1070 510
2020 3499 1901 1055 543
2021 3523 1862 1043 618
2022 3365 1712 1014 637
2023 3176 1434 1057 685

강원=양재미디어 기자 yjmedia@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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