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창지 침수 … 복구에 수십년 물 공급부족 상황 장기화 전망 “최소 50여만㏊ 사막화 위기”
러시아 점령지인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주의 카호우카댐이 전쟁에 파괴되며 세계 최대 곡창지대의 훼손이 불가역적으로 커지자 범지구적 식량난이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독일 DPA통신에 따르면 유엔세계식량계획(WFP)은 7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댐 붕괴가 전세계 기근 위기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WFP 독일 담당 마르틴 프리크 국장은 “댐 붕괴로 대규모 홍수가 발생해 새로 심은 곡물이 훼손됐다”며 “우크라이나산 곡물에 의존하는 전세계 3억4500만명의 굶주린 사람들에게 희망이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번 사태가 장기적이라는 점이다. 미콜라 솔스키 우크라이나 농업부 장관은 국영텔레비전과의 인터뷰에서 “이 지역 관개시스템에 수년간 물이 공급되지 않을 것이며, 이를 수리하려면 카호우카댐을 복원하는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다목적댐인 카호우카댐은 우크라이나의 젖줄인 드니프로강의 수위를 조절하는 6개 댐 가운데 가장 하류에 있으며 높이 30m, 길이 3.2㎞, 저수량 18㎦에 이른다. 이는 미국 그레이트솔트호에 맞먹는 규모다.
우크라이나 농업정책부는 카호우카댐 수량이 크게 줄면서 헤르손주 관개시설의 94%, 자포리자주 74%, 드니프로페트로프스크주의 30%가 물 부족을 겪을 것으로 전망했는데, 이 면적은 약 58만4000㏊에 이른다. 솔스키 장관은 “우크라이나 남부에 있는 수만㏊의 농경지가 홍수로 침수됐을 뿐만 아니라 최소 50여만㏊의 땅은 ‘사막’으로 바뀔 위기”라며 우크라이나의 이중고에 대해 설명했다.
피해 복구도 쉽지 않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댐의 엔진실에서 약 150t의 기계유가 유출돼 유독성 물질이 강 하류로 흘러내려갔으며, 추가로 기계유 300t이 유출될 위험이 있다고 밝혔다.
또 카호우카댐 주변이 지난 1년 넘게 전쟁의 최전선이었던 만큼 그동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드니프로강을 따라 매설된 지뢰 수만개도 홍수에 유실돼 섣불리 피해 복구작업에 나서기도 어렵게 됐다. 영국 ‘가디언’은 이에 따라 댐 붕괴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는 데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년이 걸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편 우크라이나는 세계 최대 곡물 수출국 중 하나로 지난해 2월 전쟁 발발 이후 흑해를 통한 수출길이 막히자 세계 식량시장이 영향을 받은 바 있으며, 실제로 댐 폭파 보도 뒤 국제 밀 가격이 2% 이상 급등하는 등 농산물 가격이 상승했다. 이연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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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주의 카호우카댐이 파괴되며 주거지와 농경지가 침수된 모습.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