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근로자 숙식비 사전공제 금지 ‘논란’ 인권위 재권고에 뿔난 농심
고용노동부에 법률 개정 촉구 농업계 “숙식비 선청구는 합당 ” 고용허가제 지침도 ‘징수’ 인정 숙식 미제공땐 근로자만 ‘손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외국인 근로자 숙식비 사전공제 문제를 재점화하면서 농심이 들끓는 모양새다.
최근 인권위는 보도자료를 통해 “고용노동부에 법률을 개정해 숙식비 선공제 금지조항을 신설하도록 권고했는데, 권고 이행을 위한 조치 일부를 추진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합리적 숙식비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기존 권고를 재확인한다”고 밝혔다.
2022년 9월 나온 인권위의 최초 권고는 2020년말 경기 포천에서 외국인 근로자가 사망한 일이 발단이 됐다. 당시 외국인 근로자의 열악한 주거문제가 대두했고, 이에 고용부는 농지 내 가설건축물을 숙소로 제공하는 농가에는 신규 외국인 근로자를 배정하지 않는 등의 조치를 단행했다. 인권위는 여기서 더 나아가 “숙식비 선공제를 법령으로 금지하라”고 권고했다.
농촌에선 숙식비 선공제가 복리후생에 따른 비용을 합당하게 징수하는 것이지 인권문제와는 무관하다고 항변한다. 현재 농가가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하려면 기숙사 제공이 사실상 강제된다. 고용허가제는 점수에 따라 근로자를 농가에 배정하는데, 우수 기숙사를 설치·운영하는 농가에는 가점을 주고 기숙사가 일정 기준에 미달하면 감점이 부여된다. 관련 지침이 ‘숙식비는 사업주가 부담할 의무는 없다’면서도 ‘숙식을 제공하면 합리적 수준으로 비용을 징수할 수 있다’고 규정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노동계에서 요구하는 건 사후공제다. 하지만 농촌에선 현실을 모르는 얘기라고 말한다. 윤상진 경남 밀양시농업외국인고용주연합회장은 “월급을 모두 본국으로 보내 숙식비를 안 주고 버티거나 사업장을 이탈할 경우 대책이 있느냐”고 꼬집었다.
공제율을 낮추라는 요구도 노동계에서 나온다. 현재는 아파트나 단독·다세대 주택 등의 숙소와 식사를 제공하면 통상 임금의 20%(임시 주거시설을 숙소로 제공하면 최대 13%)까지 공제할 수 있다. 월 150만원을 받는 근로자에게 아파트와 식사를 제공하면 최대 30만원을 공제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한 농가는 “전세 3000만원짜리 원룸을 빌려도 7%대 이자비용을 감당하는 데만 월 20만원이 든다”면서 “2억∼3억원대 아파트를 빌린 후 수천만원을 들여 기숙사로 리모델링하는 곳도 있는데 공제율을 낮추면 비용을 고스란히 농가가 감수하라는 것이냐”고 하소연했다. 더구나 기숙사에서 사업장까지 출퇴근할 때 농가가 제공하는 교통서비스는 전혀 비용으로 고려되지 않는다는 게 현장의 지적이다.
오히려 농업계에선 공제율을 유연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농민단체 관계자는 “공제율이 낮아지면 오히려 숙식의 질이 열악해질 수 있다”면서 “아주 안 좋은 숙식을 제공할 땐 공제율을 13%보다 낮게 적용하되 반대로 높은 수준의 숙식을 제공하면 20% 이상으로 공제할 수 있어야 농가도 주거·먹거리 질을 높이기 위한 재투자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고려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농촌에선 차라리 외국인 근로자가 숙식을 알아서 해결하도록 하자는 의견까지 제기된다. 윤 회장은 “결국 피해는 지금보다 비싼 비용으로 어렵게 숙식을 해결해야 하는 외국인 근로자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양석훈 기자 shakun@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