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물가용 농산물 할당관세 … “농가용 대책도 할당을”
입력 : 2023-06-07 14:29
수정 : 2023-06-07 14:29
정부, 국무회의서 결정
돈육·생강 등 관세 대폭 인하

가격패턴 고려않고 정책 추진

대형유통·저장업체만 돈벌이

정부가 물가안정을 이유로 1년 넘게 주요 농축산물의 관세를 낮추거나 없애는 정책을 펼쳐 농가들의 불만이 극에 달하고 있다.

정부는 5월30일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제22회 국무회의를 열고 가계 부담 완화를 위해 8개 농축수산물의 관세율을 이달초부터 크게 인하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주요 대상은 돼지고기·고등어·생강이다. 이에 따라 돼지고기는 이달부터 연말까지 4만5000t에 달하는 물량이 할당관세 0%를 적용받는다. 생강은 기존 377.3%의 관세율 대신 20%의 낮은 세율을 적용받는 저율관세할당(TRQ)물량을 1500t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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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당국은 지난해초부터 물가안정에 대한 요구가 나올 때마다 ‘농축산물 무관세(관세 인하)’를 대응책으로 내밀고 있다. 지난해에는 돼지고기·쇠고기·닭고기·양파 등 주요 농축산물은 물론 바나나·망고·파인애플 등 열대과일에도 할당관세를 적용했다. 그 결과 지난해 농축산물 수입량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고, 무관세 정책의 주요 대상이었던 닭고기·돼지고기 수입량은 전년 대비 각각 54%·25.9% 늘었다.

올해도 이런 기조는 달라지지 않았다. 물가당국은 올초 돼지고기·닭고기·양파의 할당관세 적용 기간을 2∼6개월 연장한 데 이어 닭고기는 할당관세(0%) 적용 물량을 3만t 추가했다. 대파·무는 할당관세(0%)를 신규 적용하고 양파도 TRQ물량을 2만t 증량했다. 이어 올 하반기에도 농축산물을 무관세 혹은 낮은 관세로 수입하겠다면서 대상 품목으로 돼지고기·생강 등을 선정한 것이다.

정부가 연일 쏟아내는 농축산물 무관세 정책에 농가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물가당국이 농산물 성출하기나 연중 가격 변동 패턴에 대한 이해 없이 무작정 관세를 낮추는 데 급급하다고 지적한다.

본격적으로 중만생종 양파를 수확하는 5월초 기획재정부는 찬물을 끼얹듯 양파 TRQ물량을 2만t 늘리는 ‘시장접근물량 증량에 관한 규칙 일부 개정령안’을 입법예고했다. 이미 농가들은 올들어 급증한 양파 수입량에 우려를 표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농식품수출정보(KATI)에 따르면 1∼4월 양파 수입량은 3만5000여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0% 넘게 늘었다. 전국양파생산자협회는 성명서를 통해 “양파 출하기 수입을 통해 이득을 보는 것은 소비자가 아닌 대형 유통·저장 업체뿐”이라고 지적했다.

농축산물 관세 인하의 근거로 삼는 가격 동향을 두고는 품목별 특수성을 반영하지 않고 편의적으로 해석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대한한돈협회 관계자는 “돼지고기 가격은 일반적으로 4∼8월에 올랐다가 9월∼이듬해 3월 떨어지는 양상을 보인다”며 “양돈농가들은 여름철 수익으로 남은 기간의 손실을 보전해왔는데 정부가 여름철 가격 상승을 억제해 수익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서 할당관세물량이 돼지고기 가격 하락기와 맞물려 수입되면 농가들의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고 밝혔다.

기존에 무관세 정책 대상이 아니었던 품목까지도 마구잡이로 관세 인하 대상으로 집어넣은 점도 반발을 키우고 있다. 정부는 3월 대파를 할당관세(0%) 신규 적용 품목으로 지정하면서 지난해와 달리 신선대파 외에 건조·냉동 대파도 대상에 포함했다. 건조·냉동 대파의 주요 수요처인 대형 식자재업체에까지 관세 인하의 혜택을 줘야 하느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또 이번에 TRQ물량을 늘린 생강 역시 이례적으로 식용 1500t을 낮은 관세로 수입한다. 매년 고정적으로 수입하는 생강 TRQ물량 1860t은 종자용이다. 임희문 한국생강생산자연합회장은 “농가들은 지난해 생강 가격이 좋지 않아 어려움이 컸지만 그나마 올해 생강 가격이 올라 기대했는데 정부가 바로 생강을 수입하겠다고 밝혀 허탈해한다”며 “생산비는 끊임없이 올라가는데 정부가 농산물 가격을 억누르기만 한다”고 지적했다.

오은정 기자 onjung@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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