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자립도 10%대 지역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90% 중앙 재원이 끊기면 어떻게 될까 고민하던 차에 고향사랑기부제(고향기부제)는 마지막 기회처럼 보였습니다. 잘만 하면 기부금이라는 자주 재원으로, 중앙정부 도움 없이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엔 고향기부제에 큰 에너지를 안 쏟고 있습니다. 쏟으려야 쏟을 곳이 없거든요.”
올 1월 고향기부제 도입 당시 우려됐던 건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이 준비가 됐느냐였다. 별도 전담조직도 없는 대다수 지자체에서 소수 공무원이 고향기부제 홍보, 답례품 선정, 기부 접수, 기부금 관리, 기부자 관리, 세제 행정 등을 도맡을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컸다.
다음달이면 고향기부제를 도입한 지 반년이 된다. 이런 문제가 없진 않았지만 최근 보이는 더 큰 문제는 어떻게든 해보려는 지자체의 의지와 사기를 제도가 억누르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취재한 지자체 공무원들에게선 비슷한 낙담이 들렸다. 제도가 홍보·모금 방법 등을 지나치게 옥좨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인구 1만5000명 초소형 지자체의 한 관계자는 “일본에선 어느 지자체가 자연재해로 고향납세를 많이 모금했다던데 우리도 재해를 기다려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또 다른 지자체 관계자는 “정부는 명함에 고향기부제를 표기하는 것조차 기부 강요처럼 비칠 수 있다고 한다”면서 “모금을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유일한 온라인 접수처인 ‘고향사랑e음’을 개선해달라는 요구도 많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지역의 오래된 유산을 고향기부제로 보전하려는 프로젝트를 구상했지만 현재 고향사랑e음에선 이를 알리기가 쉽지 않아 노력이 허사가 된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고자 한 지자체가 민간 플랫폼과 협력을 추진했다가 행정안전부의 저지로 ‘올스톱’된 일은 잘 알려진 일화다.
홍보와 모금 방법 개선, 기부 한도와 기업 등으로 기부 가능 대상 확대, 민간 참여 허용 등 현장에서 요구하는 개선사항이 쌓여 있다.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표방하고 지방소멸 방지를 국정과제로 내건 정부가 제도 개선은 나 몰라라 하면서 오히려 지자체 사기를 꺾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오죽하면 ‘전 정부 국정과제라 부담을 느낀다’ ‘중앙정부는 지방정부가 자주 재원을 확보하기보다 보조금으로 통제하는 상황을 원하는 것 같다’는 뒷말까지 나올까. 지방소멸 초시계를 고려하면 시간이 많지 않다.
양석훈 정경부 기자 shakun@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