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청, “페루산 녹두 원산지 조사는 적법
입력 : 2023-04-11 05:01
수정 : 2023-04-11 05:01

관세청이 2021년 페루산 녹두를 수입하며 원산지를 위반한 것으로 보이는 수입업체들을 상대로 관세 추징 절차에 들어간 가운데(본지 2022년 9월28일자 1면·6면 보도) 페루 현지에서 타국에서 밀수된 것으로 추정되는 녹두가 거래된다는 제보가 접수됐다. 특히 페루 정부가 발표한 녹두 생산량 통계가 급조됐다는 의심스러운 정황도 포착돼 페루산 녹두에 대한 원산지 위반 의혹이 한층 깊어지는 상황이다.

◆현지 제보 “페루서 아르헨티나·볼리비아산 녹두 판매 확인”= 본지는 최근 한 제보자로부터 페루 현지에서 밀수된 것으로 추정되는 아르헨티나산 녹두가 거래되는 현장이 담긴 영상을 확보했다. 지난해 관세청에서 관세를 추징당한 일부 수입업체들이 페루에 밀수된 녹두가 없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이와 정반대되는 정황 증거가 나타난 것이다.

제보자는 페루에서 시장조사를 하다가 한 도매시장에서 페루산이 아닌 외국산 녹두가 거래되는 것을 확인하고 영상을 촬영했다고 밝혔다. 제보자가 보내온 영상은 총 2편으로 각각 1분 남짓 분량이다. 첫번째 영상은 제보자가 페루 현지 도매상을 찾아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어 제보자가 녹두가 담긴 자루를 가리키며 “그럼 질문 하나 할게요. 이건 페루산입니까, 수입산입니까?(Y una consulta, senor, una consulta. Esto es peruano o importado?)”라고 묻자 도매상은 “아르헨티나산입니다(No. Eso es argentino)”라고 답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이에 제보자가 “아르헨티나? 오 그래요?(Argentino? A mira ah)”라고 다시 한번 확인하자 페루 도매상은 “국산은 없어요(No tengo nacional)”라고 답변한다.

제보자가 페루산과 수입 녹두의 차이를 묻자 도매상은 “수입은 푸른빛이 더 강하고 국산은 좀더 어두워요. 질감은 모르겠어요(Me parece que el importado es mas verdecito y nacional mas oscuro, nose el contexto)”라고 설명하는 장면도 나온다.

영상은 제보자가 상점을 나서며 녹두가 담긴 자루의 무게를 묻자 도매상이 “100㎏이에요.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없어요. 아직 국경에서 도착을 안했어요(100㎏. Pero nada mas, todavia no esta llegando del frontera)”라고 답하는 장면을 끝으로 마무리된다.

두번째 영상은 또 다른 도매상이 밀수업체로 추정되는 곳에 전화를 걸어 수입 녹두를 계속 공급해줄 수 있는지 묻는 내용으로, 해당 도매상 또한 수입 녹두를 판매하고 있었다는 게 제보자 설명이다. 제보자는 “간단한 현지 조사만으로 페루에서 아르헨티나·볼리비아산 녹두가 활발히 거래되는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페루에서 수입이 금지된 외국산 녹두를 구매하는 게 어렵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고 전했다.

◆페루 농산물 밀수 규모 확대 추세= 페루에서 판매되는 아르헨티나·볼리비아산 녹두는 모두 밀수를 통해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페루 정부는 식물 검역 등의 이유로 녹두의 수입을 공식적으로 막고 있기 때문이다.

페루의 국세관리 및 통관감독청(Sunat)이 지난해 발표한 ‘2021년 페루의 밀수품 추정’ 보고서에 따르면 당해연도 페루의 밀수품 규모는 약 5억9100만달러(7700억원)로 추산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페루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볼리비아는 일반적으로 밀수품의 중간 경로 역할을 하고 있는데, Sunat는 특히 2021년 국경 폐쇄가 밀수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봤다.

볼리비아를 경유한 밀수품 상당수는 페루 동남부 푸노(Puno)지역을 거쳐 페루 북부로 유통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Sunat이 추산한 푸노지역의 밀수품 규모는 약 2억3400만달러(3000억원)에 달한다.

보고서는 “주된 밀수품은 일반적으로 제조품이지만, 반대로 볼리비아산 밀수품은 식품에 집중돼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페루 현지에서 농산물 밀수는 매년 증가 추세에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등 페루 현지 언론들의 보도를 종합하면 농산물 주요 밀수 품목은 콩·옥수수·고기·달걀 등으로 매년 확대 추세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볼리비아에서도 밀수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언론 은 지난해 10월 볼리비아 돼지고기·양고기가 페루로 밀수출돼 볼리비아 내 돼지고기 가격이 폭등하는 등 수급문제가 심각해졌다고 보도했다. 특히 2016년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 페루 전 대통령은 푸노를 방문해 “푸노지역에 밀수문제가 약간 있어도 크게 우려하지 않는다”며 공식적으로 밀수를 인정하는 발언을 해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푸노지역의 밀수 여부가 중요한 이유는 이 지역이 쿠스코와 인접해 있기 때문이다. 2021년 페루산 녹두를 수입한 국내 업체들 중 일부는 페루산 녹두의 생산지를 쿠스코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쿠스코는 평균 해발고도가 3000m에 달하는 고산지대로 기후 등의 이유로 녹두 재배가 불가능한 곳이다.

페루 현지 소식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페루의 농산물 밀수문제가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며 “밀수된 농산물 유통을 확인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전했다.

◆페루 녹두 생산량 통계 급조 정황 나타나= 페루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2020∼2021년 녹두 생산량 통계가 급조 됐다는 정황도 포착됐다. 농업관개부(MIDAGRI)는 2020년 ‘2019 농업 생산(PRODUCCION AGRICOLA)’ 통계를 발표한 후 코로나19 등의 이유로 통계 발표를 잠정 중단했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 페루 정부는 기습적으로 2020∼2021년 통계를 발표했는데, 당시는 한국 세관이 페루산 녹두 수입업체에 1차 관세 추징을 통보하고 서류 증빙 등을 요구하던 시점이었다.

페루 정부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20년 녹두 생산량은 2046t(1112㏊), 2021년 9744t(4756㏊)이었다. 하지만 본지가 페루 현지인들을 통해 확인한 결과 지난해 상반기 페루 농업관개부는 수출업체들에 녹두 생산량 통계 작성에 협조해달라는 요청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농업관개부는 수출업체들에 “2019년 페루 녹두 생산량이 266t이었는데, 2021년 한국으로 8601t이 수출돼 원산지 관련해 신뢰문제가 발생했다”며 “한국 정부에서 생산자료를 요청했기 때문에 농업관개부에 녹두의 월별 생산량을 집계해 전달해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집계 방식에 대해 큰 의문을 보였다. 한국은 생산량 통계를 작성할 때 실측 조사와 항공촬영, 표본농가를 대상으로 한 전화면접 조사 등 정밀한 과정을 거쳐 데이터를 집계한 후 수리모형을 통해 생산량 통계를 산출하는데, 페루 정부의 방식처럼 입력자가 임의로 자료를 입력하게 할 경우 신뢰성이 극히 낮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관측기획실 관계자는 “국가에서 2년치 통계를 한번에 발표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로 통계 작성 과정에서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방증”이라며 “특히 수출자에 임의로 자료를 입력하게 하면 의도에 따라 수치가 변동할 수 있어 신뢰성에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관세청, 부실 조사 논란에 적극 반박= 관세청은 최근 일부 언론에서 제기한 페루산 녹두 원산지 조사에 대한 부실 의혹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2021년 페루산 녹두를 수입했다 지난해 관세 추징을 당한 일부 업체들은 최근 한 언론을 통해 관세청이 조사를 강압적으로 진행하고, 통역에 녹두 수출업자를 고용하는 등 원산지 조사가 부실하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관세청은 보도자료를 내고 “페루산 녹두 관세가 철폐된 2021년 수입량이 8561t으로 전년(133t) 대비 약 63배 증가해 한·페루 자유무역협정(FTA) 제4.8조, FTA관세법 제17조에 따라 원산지 조사에 착수했다”며 “원산지 확인을 위한 자료는 페루 생산자·수출자, 국내 수입업체 상황, 원산지 조사 사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요구한 것으로 과도하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페루 현지 검증 시 모든 자료의 열람과 제출은 조사 대상자의 동의와 페루 검증당국 공무원 입회하에 진행됐다”며 모든 조사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진행됐음을 강조했다.

실제 관세청은 페루에 대한 지난해 4월 사전 답사와 8월 정식 원산지 조사에서 페루 현지 생산 상황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세청이 지난해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경남 진주갑)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현지 방문 결과 관세청은 북서 해안지역에선 일부 상업적 생산 가능성을 확인했으나 남동 산악지역에선 녹두 재배장소를 확인할 수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업체들의 원산지 증빙 과정에서도 관세청은 여러 업체들이 동일한 농지대장을 제출하는 등 서류 증빙에서 상당수 문제점을 발견해 원산지 위반에 대한 의심이 커진 것으로 알려졌다. 관세청 관계자는 “이번 원산지 조사와 관련해 페루 정부에서 한국 정부에 공식적으로 입장을 표명한 적은 없다”며 “앞으로도 원칙대로 처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강원=양재미디어 기자 yjmedia@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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