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신용 위험 막을 ‘신용보험’
입력 : 2023-03-30 15:20
수정 : 2023-03-30 15:20

“대책이 있긴 합니까?”

연초 열린 ‘전세보증금 피해 임차인 설명회’에 참석한 한 피해자는 울분을 토했다. 이른바 ‘빌라왕 사건’으로 통칭되는 대규모 전세보증사기. 자기자본 없이 대출과 전세보증금을 밑천으로 ‘갭투기’를 일삼은 사기꾼(빌라왕)이 사망하자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피해자들이 속출하면서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렸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보험을 믿었지만 사기꾼의 사망으로 이에 의한 전세금 반환 역시 미지수가 됐다.

빚도 재산이라는 말이 있다. 농담 반 진담 반의 이야기지만 누군가에겐 뼈저린 현실이다. 빚도 상속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용보험’이라는 안전망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신용보험은 금융기관에서 대출받은 차주가 사망 등으로 인해 돈을 갚을 수 없는 상황이 됐을 때 보험회사가 채무자를 대신해 그 금액을 전부 또는 일부 상환해주는 상품이다. 채무자의 가족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보증보험과 달리 신용보험은 채무가 소멸돼 채무 상속으로 인한 경제적 위험을 방지할 수 있다. 금융사엔 채무불이행에 대한 위험을 낮추고 고객에게는 안전장치를 마련해줘 긍정적이라는 평가다. 빌라왕 사건 피해자들에게도 ‘신용보험’이 대책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고금리 기조에 신용보험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대출자 100명 가운데 5명이 전 재산을 다 팔아도 빚을 갚지 못하는 고위험가구로 집계됐다. 기준금리에 따라 대출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가계대출 상환 여력이 턱밑까지 찬 사람들이 급증했다.

하지만 우리에게 신용보험이 생소한 까닭은 국내 취급 보험사가 단 3곳뿐이기 때문이다. 국내 금융사들이 신용보험 취급에 소극적인 이유는 ‘꺾기’처럼 보일 수 있어서다. 꺾기는 금융사가 대출을 빌미로 보험·펀드 등에 강제로 가입시키는 것을 말한다. 금융당국이 소비자 피해를 막기 위해 이를 강하게 규제하고 있어 은행들은 대출창구에서 보험상품 설명을 못하도록 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먼저 신용보험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규제를 개선해야 금융사가 움직인다는 의미다.

최근 금융당국은 시중은행의 과점체계를 깬다면서 은행 외 금융사들의 규제를 완화해 은행업 문턱을 낮추고 있다. 하지만 우선 고려돼야 할 것은 소비자 보호다. 가계대출이 한국경제의 뇌관으로 불리는 가운데 신용보험이 대출자와 금융사 모두를 신용 위험에서 보호할 수 있는 합리적인 해결책이 되길 기대한다.

이유리 정경부 기자 glass@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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