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술 답사기] 입안 가득 쑥향에 반하고, 은은한 단맛에 취하다
입력 : 2023-03-23 14:18
수정 : 2023-03-23 14:18
(53) 대전 ‘주방장양조장’
계약재배한 고품질 애엽 사용한 ‘쑥크레’ 

설탕 뜻하는 프랑스어 ‘쉬크르’에서 따와
처음엔 열대과일향 … 천천히 원재료 음미
회·슴슴한 빵 등 담백한 음식과 찰떡궁합

따뜻한 봄이 되면 식탁에 귀한 손님들이 자리한다. 달래·냉이 같은 봄나물이 그것. 이중 향긋한 향과 쌉싸래한 매력으로 이들과 견줄 별미가 있으니 바로 쑥이다. 쑥은 봄바람 불면 밭·논두렁뿐만 아니라 아파트촌 한가운데서도 고개를 빼꼼 내민다. 새로 돋은 야들야들한 쑥으로 막걸리를 빚으면 어떤 맛일까. 쑥막걸리 <쑥크레(10도)>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대전 주방장양조장을 찾아가봤다.

“왜 주방장양조장이냐고요? 제가 호텔 주방장이었거든요. 하하.”

주방장양조장은 양조를 맡은 호텔 주방장 출신 김하진 대표(32)와 마케팅·홍보 담당인 이은효 대표(31)가 운영한다. 주방장은 요리하는 사람을 뜻하기도 하지만 술을 만드는 비법서를 부르는 ‘주방문(酒方文)’에서 착안한 말이기도 하다. 두사람은 2016년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났다. 자신들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 뜻을 교환하다 합이 맞은 것. 김 대표가 진중하고 학구적인 타입이라면 이 대표는 톡톡 튀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는 데 거침없다.이들은 양조장 여행을 다니며 수년간 술 공부를 함께 했다. 의견이 부딪치면 싸우기보다 조율하며 풀어냈다. 그야말로 찰떡궁합 파트너인 셈.

“처음엔 이름처럼 식당(비스트로) 형태로 시작했어요. 막걸리 빚기 원데이 클래스(일일강습)도 열었죠. 강의하다가 다양한 부재료를 술에 넣어보기 시작했고 그러다 쑥막걸리를 개발한 거예요.”

시중에 쑥막걸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쑥은 향이 강하고 쓴맛도 있어 다루기 쉽지 않은 재료다. 종류도 다양하다. 비비면 개똥 냄새가 난다는 개똥쑥, 생명력이 강해 겨울에도 죽지 않는다는 사철쑥이 있는가 하면, 뜸에 주로 쓰는 약쑥을 ‘애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주방장양조장에선 애엽으로 술을 빚는다. 예전에는 쑥을 직접 캐오기도 했지만 요샌 인근 지역에서 계약재배해 질 좋은 쑥을 들여온다.

출시한 지 1년째인 <쑥크레>는 겉으로 봐선 막걸리라고 믿기 어렵다. <쑥크레>는 프랑스어로 설탕을 뜻하는 쉬크르(Sucre)에서 따온 말이다. <쑥크레>의 특징인 은은한 단맛과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용기는 와인병 모양으로 라벨엔 쑥을 형상화한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다. 특히 750㎖ 병을 뒤집으면 마치 쑥이 땅에서 피어나는 모습처럼 보인다. 마시는 방법도 재미있다. 먼저 섞지 않고 맑은 부분만 따라 청주로 즐긴다. 그리고 남은 걸쭉한 쑥막걸리만 별도로 마시면 제맛을 훨씬 잘 느낄 수 있다.

“대부분 막걸리가 불투명하고 저렴한 플라스틱병에 담겨 있어 평가절하 되는 게 늘 아쉬웠어요. 우리 막걸리가 와인만큼 제대로 대접받으면서 즐기는 술이 됐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죠.”

<쑥크레>는 회색빛이 연하게 감도는 아이보리 빛깔의 막걸리다. 처음 마셨을 때는 열대과일인 리치향이 난다. 그러다보니 <쑥크레>를 마시고 단번에 쑥을 떠올리는 건 쉽지 않다. 익숙한 쑥향은 술을 마시고 난 뒤 천천히 기분 좋게 입안에 퍼진다. ‘이거 뭐지?’라는 물음표가 절로 떠오른다.

“처음 드신 분들은 포도를 넣었느냐고 물어봐요. 마침 저희가 좋아하는 막걸리가 그런 거예요. 부재료가 들어갔지만 너무 강하지 않고 쌀과 조화를 이루며 향기로운 술이지요. 마시는 분들이 ‘뭐가 들어갔을까?’라는 궁금증을 갖길 바랐는데 적중한 셈이지요.”

<쑥크레>는 담백한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이 대표는 슴슴한 주식 빵인 사워도(Sourdough·유산균과 효모의 공생 배양물) 빵을 추천했다. 이밖에 회나 맑은 생선탕도 좋다. 향긋한 쑥전도 괜찮다. 너무 간이 센 음식은 피하는 게 낫다는 조언도 곁들였다. 은은한 쑥향이 묻힐 수 있기 때문.

환상의 파트너는 새로운 술 개발에 열심이다. 수박 같은 과일이나 다양한 나물도 술 원료로 적합한지 실험해보고 있다. 쑥으로 만든 술에 특별한 부재료만으로도 새로운 맛을 낼 것을 찾고 있다. 이르면 올해말, 또는 내년초쯤 신제품을 기대해봄 직하다.

“쑥막걸리 하면 <쑥크레>가 대명사처럼 떠올랐으면 좋겠어요! 오랫동안 쑥과 씨름한 뒤 쑥 고유의 특징이 배어 나오도록 빚어낸 만큼 많은 사람들이 즐기길 바라요.”(이 대표)

“<쑥크레>를 위해 앞만 보고 달린 것 같아요. 앞으로도 지치지 않고 오랫동안 많은 분들로부터 사랑받는 술을 만들고 싶습니다.”(김 대표)

<쑥크레>는 오프라인 주류판매점이나 대전 주방장양조장에서만 직접 구매할 수 있다.

대전=박준하 기자 june@nongmin.com

=CAPTION=
쑥을 손질하고 있는 이은효 대표(오른쪽)와 김하진 대표.
대전 주방장양조장의 ‘쑥크레’. 쑥을 넣은 막걸리로 과일 못지않은 향긋한 향이 난다. 대전=김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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