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연속으로 대규모 수입 국산값 지난해보다 35% ↓ 농가 “생산기반 붕괴 우려” 관세법 특례 개정됐는데도 당국 “업체이익 침해 … 신중”
2021년 8500t 이상 수입되며 대규모 원산지표시 위반 사례가 적발됐던 페루산 녹두가 지난해에도 5000t 넘게 수입된 것으로 나타나 생산자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생산자들은 원산지 검증이 이뤄지지 않은 채 무분별하게 수입된 페루산 녹두로 국내 생산기반이 붕괴되고 있다며 통관 전 원산지 검증을 할 수 있도록 정부에 요청하고 있다.
◆지난해 페루산 녹두 5000t 이상 수입…국내 생산기반 붕괴=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녹두 수입량은 1만2193t을 기록했다. 지난해 수입된 녹두는 페루산과 중국산이 대부분을 차지했는데 페루산이 5867.3t 수입돼 가장 많았고 중국산이 5377.3t으로 그 뒤를 이었다. 미국(619.2t)과 우즈베키스탄(327.7t)에서도 녹두가 수입됐지만 비중은 미미했다.
문제는 2021년 수입된 페루산 녹두에서 대규모 원산지표시 위반 사례가 적발됐고 이후에도 원산지표시 위반 의혹이 지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1년 발효된 한·페루 자유무역협정(FTA)으로 페루산 녹두 관세(607.5%)는 2021년 철폐됐다. 이에 따라 2021년 페루산 녹두 수입량은 8561.2t으로 전년(134t) 대비 64배 폭증하며 원산지표시 위반 의혹이 제기됐고 이후 관세청 조사 결과 상당수 물량에서 원산지표시 위반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페루산 녹두에 대해 원산지 조사를 진행한 관세청은 1차 조사 대상인 9개 업체가 수입한 물량 2177t 가운데 2138t이 증빙자료 미제출 등 원산지 증명 요건을 불충족한다고 판단, 지난해 9월 협정관세 적용 배제를 통보하고 이의 신청을 받아 처분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2·3차 조사를 진행해 나머지 업체 30여곳이 수입한 물량에 대한 후속 조사도 하고 있다.
생산자들은 이처럼 2021년 수입된 페루산 녹두에서 대규모 원산지표시 위반이 적발됐고, 추가 조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도 원산지 검증이 이뤄지지 않은 물량이 대량으로 수입돼 국내 생산기반이 붕괴될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현재 페루산 녹두에 대한 원산지 검증은 통관을 먼저 진행한 후 이뤄진다. 이에 따라 원산지표시를 위반한 페루산 녹두가 국내에서 유통된 뒤 사후 검증을 통해 적발되더라도 이미 유통된 물량에 따른 가격 하락 등 국산 녹두가 입는 피해는 막을 수 없다는 게 생산자 측 시각이다.
실제 2021년 페루산 녹두를 수입했다가 원산지표시 위반 의혹으로 조사를 받는 업체들 중 일부가 지난해에도 수입을 이어갔고, 페루 현지에선 원산지표시 위반으로 적발됐던 수출업체들이 이름을 바꿔 한국에 수출하고 있다는 의혹이 팽배한 상황이다.
한 수입업체 관계자는 “현재 페루 현지에선 1차 조사에서 적발됐던 수출업체들이 이름을 바꿔 한국 업체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며 “지난해에도 원산지를 속인 녹두가 한국으로 수출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이같은 페루산 녹두 수입 영향으로 국산 녹두값은 폭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13일 서울 양곡시장에서 국산 녹두는 1㎏당 평균 1만3782원에 거래돼 지난해(2만1346원)보다 35.4% 낮은 값을 기록했다.
최정웅 전남 나주 알곡영농조합법인 대표는 “원산지표시 위반 의혹이 계속되는 와중에도 지난해 페루산 녹두 수입이 대규모로 지속돼 국산 녹두값이 폭락했다”며 “이대로 가면 생산기반이 취약한 국산 녹두 특성상 농사를 포기하는 농민이 속출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생산자 “페루산 녹두 원산지 사후 검증에서 사전 검증으로 바꿔야”=이처럼 수입 녹두에 따른 피해가 확산하자 생산자들은 현재 사후에 진행되는 페루산 녹두에 대한 원산지 검증을 사전 검증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페루산 녹두에 대한 원산지 검증을 통관 전에 시행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마련된 상황이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자유무역협정의 이행을 위한 관세법의 특례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을 개정했고, 이에 따라 관세청장은 특정 품목을 고시해 수입신고 수리 전 원산지 검증 등 협정관세 적용 여부를 심사할 수 있게 됐다.
이어 관세청은 ‘자유무역협정의 이행을 위한 관세법의 특례에 관한 법률 사무처리에 관한 고시’ 개정을 통해 관세청장이 ▲협정관세율과 관세법에 따른 세율간 차이가 큰 물품 ▲수입 상대국의 통상적인 생산량에 비해 우리나라로의 수입량이 과도하게 많은 물품 ▲원산지표시와 협정관세 적용 요건 위반 등에 따른 관세탈루 위험성이 높다고 인정하는 물품 등을 협정관세 사전 심사 물품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했다.
법적 근거는 마련됐지만 관세청은 페루산 녹두를 사전 심사 물품으로 지정할 경우 수입업체들의 민원이 예상돼 신중히 결정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관세청 관계자는 “고시 개정에 따라 특정 품목을 협정관세 사전 심사 물품으로 지정할 수 있게 됐다”며 “원산지 검증 방식이 사후에서 사전으로 바뀔 경우 수입업체들의 이익을 침해하는 요소가 있어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생산자들은 페루산 녹두가 관련법에서 고시한 협정관세 사전 심사 물품 요건에 해당한다며 지정을 촉구하고 있다.
조영제 한국국산콩생산자연합회장은 “정부가 국내 농업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함에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며 “이미 지난해 페루의 녹두 생산량보다 국내 수입량이 많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고, 원산지표시 위반이 적발된 만큼 페루산 녹두를 사전 심사 물품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민우 기자
minwoo@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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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대규모 원산지표시 위반이 발생했던 페루산 녹두가 지난해에도 5000t 이상 수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생산자들은 무분별한 페루산 녹두 수입을 막기 위해 수입 통관 전 원산지 검증을 할 수 있도록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