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이 규정한 농사의 범위 현실 농업과 간극 매우 넓어 저온창고 위약금 농가 반발 ‘농업용’으로 확대 개편해야
경남 사천 콩사랑영농조합법인은 2020년 한국전력공사로부터 1억원 가까운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법인이 정부 보조를 받아 지은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에서 약 2년간 농사용 전기를 사용해 콩을 선별한 것이 계약 위반이라는 이유였다. 콩 선별이 농사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더욱 황당한 것은 종전에 산업용 전기를 쓰던 것을 한전 쪽에서 농사용으로 변경해줬다는 점이었다. 한전이 과실을 일부 인정하며 과징금은 철회됐지만 이후 법인은 전기요금을 산업용 단가로 내야 했다. 이제 바쁜 달에는 콩 선별에 드는 전기요금만 800만원, 법인은 지금이라도 시설을 정부에 반납하고 싶다고 토로한다.
농사용 전기를 둘러싼 분쟁이 빈번해진다. 혜택을 주는 ‘농사’의 범위를 농업 전문성이 부족한 한전이 규정하기 때문이다. 농사용 전기를 ‘농업용 전기’로 개편해 법률이 규정하는 농업은 혜택을 보도록 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 저온저장고에 김치를 보관한 전남 구례 농가에 한전이 농사용 전기를 부당하게 사용했다며 위약금을 부과, 농업계가 들끓고 있다(본지 2월6·10일자 5면 보도). 현장에선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다. 농사용 전기요금 체계가 현장에선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애매모호해서다.
한전 단속 근거는 ‘영업업무처리지침’이다. 지침은 농사용 전기 혜택 대상을 매우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최근 구례에선 ‘저온저장고에는 단순 가공 농작물을 보관할 수 있다’는 지침 내용이 문제가 됐다. 김치는 단순 가공 농작물로 볼 수 없다는 게 한전 시각이다. 앞서 사천 사례에선 ‘APC란 농작물(양곡 제외) 및 임산물을 상품화하는 데 필요한 주요 공정상 시설’이라는 문구 중 ‘양곡 제외’라는 네글자를 한전이 뒤늦게 발견해 문제 삼았다.
농사용 전기는 1962년 양곡 생산을 위한 양수·배수 펌프에 처음 도입된 이후 정책 필요에 따라 대상이 확대돼왔다. 하지만 명확한 기준 없이 지침에 대상을 하나둘 확대한 결과, 현재 한전 지침이 규정하는 농사의 범위와 현실 농업은 간극이 크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최근 이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전남 담양·함평·영광·장성)이 대정부 질문에서 “벼와 배추는 (농사용 전기를 사용해도) 되고, 쌀과 김치는 안된다는 논리는 허망하다”고 지적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더욱이 농업은 6차산업 등으로 외연을 확대하고 있지만 지침이 이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이에 농사용 전기를 농업용으로 개편하자는 주장이 제기된다. 신정훈 민주당 의원(전남 나주·화순)은 “6차산업 등 새로운 농업 환경을 반영해 농사용 전기요금 제도를 농업용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농사의 범위를 한전이 규정하도록 할 게 아니라 법률에서 정하는 농업이라면 전기요금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문제는 한전이 농사용 전기의 확대는커녕 적자 등을 이유로 축소를 추진한다는 점이다. 이번 구례 사례도 ‘농사용 전기 때리기’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이에 대해 신 의원실 관계자는 “전체 전력 판매량 가운데 농사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4%에 불과한데, 적자를 이유로 농사용 혜택을 축소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면서 “대기업이 저렴하게 사용하는 산업용 고압 B·C 등을 개편해 전력 사용량이 많은 곳에서 요금을 제대로 받고, 농사용도 전체적으로 혜택은 확대하되 사용량이 큰 기업농에 할증하는 방향으로 가면 될 일”이라고 했다. 양석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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