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산지유통 대혁신 … APC 스마트화·통합조직 육성 <농산물산지유통센터>
입력 : 2023-02-03 18:49
수정 : 2023-02-03 18:49
거점화·규모화 통해 역량 키워
연중 대량거래체계 구축 계획
금산 만인산농협 대표 성공사례
온·오프라인 판로 다변화 효과
품목별 생산·유통 강화 잰걸음
5개 권역 물류허브 조성도 검토

올해 국내 농산물 유통이 새롭게 도약하는 발판이 마련될까. 최근 정부가 내놓은 ‘농산물 유통구조 선진화 방안’을 두고 추진 방향에 이목이 쏠린다. 그중에서도 스마트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를 구심점으로 산지유통의 몸집을 키워 연중 대량거래체계를 구축한다는 계획이 눈에 띈다. 이를 통해 농산물 유통 비용은 낮추고 효율성은 높인다는 구상이다.

 

◆주산지 스마트 APC 구축으로 산지 역량 강화=정부가 산지유통의 거점화·규모화를 위해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APC다. 그간 정부는 산지유통 효율화를 목표로 개별농가를 산지유통조직으로 규모화하고 APC 건립 지원을 통해 규격화한 농산물 출하 기반을 조성해왔다. 하지만 비대면·디지털 경제 성장과 함께 유통환경이 빠르게 변하면서 기존 APC의 한계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선 다품목·소량 농산물을 취급하는 APC가 많다보니 소비지에 안정적으로 농산물을 공급할 수 있는 유통·물류 체계 기반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업무의 자동화·정보화 수준이 낮고 상품정보가 표준화·디지털화하지 않은 점도 한계로 지목됐다.

이로 인해 기존 APC로는 소비지 수요에 부합하는 상품 개발이나 연중 대량공급이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대형 유통·플랫폼 업계는 품목별 산지 생산정보와 APC 상품화·재고 등 유통정보를 바탕으로 농산물을 대량으로 거래하길 원하는데 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해법이 APC의 스마트화다. 정부는 2027년까지 주요 품목 주산지에 대량거래를 위한 스마트 APC 100개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스마트 APC는 농산물 상품화 공정을 자동화하고, 입고부터 출고까지 모든 과정에서 자동 생성되는 상품·농가 정보를 데이터화해 시장분석·재고관리·농가관리 등에 활용하는 첨단시설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들어선 충남 금산 만인산농협 거점 스마트 APC다. 2004년 APC 준공 이후 2013년부터 자체적으로 자동화·정보화 시스템을 만들어온 이곳은 지난해 정부의 APC 건립 지원사업을 통해 시설을 증축하면서 본격적인 스마트화를 도입했다. 기존에 있던 다관절로봇·자동포장기·델타로봇(제품 적재)에 상자를 자동 공급하는 디스태커, 창고관리시스템(WMS) 등 설비를 추가하고 상품과 출하농가의 정보를 자동으로 데이터화하는 상품정보화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정부는 만인산농협이 꾸준히 추진해온 자동화·정보화의 성과를 통해 스마트 APC의 성공 가능성을 엿보고 있다. 이곳 APC는 자동화를 통한 효율적인 인력 배치와 작업 시간 단축으로 품질과 생산성을 높이고 원가 경쟁력을 갖추면서 온·오프라인 판로를 대거 확보했다. 소비지에서 원하는 품목을 공급하기 위해 깻잎농사만 짓던 지역농가의 다른 품목 생산을 유도하는 동시에 전국 30여개 지역농협과 농산물 유통 협업도 추진했다. 이를 통해 취급 품목은 깻잎 1개에서 엽채류·과채류 등 130여개(제품수 648개)로 다변화했고, 2010년 42억원이었던 매출액은 2022년 463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같은 기간 농가소득 역시 평균 2600만원에서 꾸준히 늘어 지난해에는 1억4000만원 이상 달성한 것으로 예상된다.

덕분에 계약재배 농가의 만족도가 높아졌다. 이곳 APC에 깻잎을 연중 출하하는 박상영씨(55·금산군 추부면 신평리)는 “도매시장에서 거래하는 것보다 훨씬 높은 값을 받고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어 고품질 깻잎 생산에만 집중하고 있다”며 “특히 APC에서 축적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수요지에서 원하는 농산물 품위 등을 농가에 지도해줘 재배할 때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박기범 만인산농협 거점 스마트 APC 센터장은 “스마트 APC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예측 가능한 농업 여건을 조성하고, APC 체력이 탄탄해지면서 최저단가 지지제를 운영하는 등 농가실익을 높이고 있다”며 “앞으론 엽채류·과채류 등의 상품화 공정을 표준화해 생산성을 더 향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원활한 스마트 APC 전환을 위해 올 상반기에 사과·양파·감자 등 주요 10개 품목별로 스마트 APC 표준모델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소비자 수요 분석과 맞춤형 상품 개발, 대량구매처에 대한 직접판매 역량을 키운다는 생각이다. 아울러 거점 스마트 APC를 집중 육성해 그에 인접한 APC를 저장·선별·상품화 등 핵심 기능별로 재구성할 방침이다.

 

◆통합마케팅조직 넘어 생산·유통 통합조직으로=정부는 스마트 APC 구축을 뒷받침하기 위해 품목별 생산·유통을 결합한 통합조직을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지역농협 등의 공동출자로 전문 품목 중심의 생산·유통 통합법인 100곳을 설립하고 통합조직에 전속 출하하는 생산자조직 3000곳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당초 정부는 2011년 이후 개별 유통조직 단위의 마케팅을 통합한 통합마케팅조직을 육성해왔다. 이를 통해 지난해 기준 통합마케팅조직 119곳의 총 취급액이 4조8000억원에 달하는 등 마케팅 규모화에 성과를 봤다.

하지만 품목 전문성이나 생산자조직과의 결속력이 낮아 소비지 수요에 부합하는 상품의 안정적인 개발·공급 역량이 미흡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이에 통합마케팅조직을 품목 전문화, 생산과 마케팅 통합을 강화한 생산·유통 통합조직으로 전환·확대한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다. 이같은 정책 추진을 위해 생산·유통 관련 정부 지원사업도 조직화 수준과 성과 평가에 따라 생산·유통 통합조직을 중심으로 차등 지원하는 등 지원체계를 개편한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생산·유통 통합조직은 생산자조직과 전속 출하와 판매권 위임 계약을 체결하고 조직 총괄 운영과 공동마케팅을 담당하는 품목 전문 유통조직”이라며 “소비구조 변화, 기술 진보 등에 따른 유통환경 변화에 대응해 생산 혁신과 수급관리 등을 담당하는 산지유통 혁신 주체로 육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전국 5개 권역의 농산물 물류 거점이 되는 스마트 물류허브 구축도 검토하고 있다. APC를 비롯한 다수 산지로부터 농산물을 수집해 유통기업 대형물류센터, 도매시장 등에 대량공급하는 콜드체인 시스템 기반의 복합물류 거점을 조성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이를 통해 산지 농산물 운송 거리·비용 절감과 상품성 향상을 도모하는 한편 통합물류와 상품화 기능뿐 아니라 로컬푸드·공공급식·식품가공 등과 관련한 복합 기능을 수행하는 첨단 복합유통단지를 조성한다는 복안이다.

금산=하지혜 기자 hybrid@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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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채류·과채류 등을 주로 취급하는 충남 금산 만인산농협 거점 스마트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작업은 자동화 설비가, 까다로운 검품·선별 작업은 사람이 맡아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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