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오염피해 발생 우려 속 인증취소 농가 행정소송 승소 재판 이겼지만 인증회복 못해 농업계, 농식품부 개선안 ‘미흡’ “결과 중심의 현행 인증제 문제 농사 과정 살피는 방안 고민을”
뿌리지도 않은 농약이 검출됐다는 이유로 친환경 유기인증이 취소됐던 농가가 최근 행정소송에서 승소했다. 하지만 남은 것은 인증 회복 대신 금전적·정신적 피해와 무너진 신뢰뿐이라고 농가는 호소한다. 비산 등 비의도적 농약 오염으로 피해를 보는 친환경농가가 적지 않을 것으로 추측되는 가운데 ‘농약 검출 여부’ 중심의 인증 방식을 크게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친환경농업계를 중심으로 나온다.
제주의 친환경농가 김모씨는 자신에게 내려진 인증 취소 처분이 부당하다면서 행정소송을 제기, 최근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서 인용 판결을 받았다. 발단은 지난해 6월, 김씨는 자신의 감귤밭에서 채취한 시료에서 농약 2종이 미량 검출됐다는 통보를 인증기관으로부터 받았다. 18년간 친환경농사를 지은 김씨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재심사와 청문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8월 인증이 취소됐다. 현행법에 따르면 농가는 이의가 있을 때 재심사와 청문을 요청할 수 있다.
김씨는 비산 가능성을 제기했다. 바로 옆 관행농의 밭에서 농약이 흩날렸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실제 김씨가 옆 밭에서 시료를 채취해 제3의 검사기관에 맡긴 결과 김씨 밭에서 검출된 것과 같은 성분이 나왔다. 반면 김씨의 밭 다른 부분에서 채취한 시료에서는 유의미한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이 전혀 고려되지 않으면서 김씨는 결국 지난해 9월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결과는 김씨 승소였다. 중앙행정심판위는 김씨가 법에 명시된 청문 기회를 제공받지 못한 점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재판은 끝났지만 싸움은 진행 중이다. 김씨가 인증 회복을 요구하는 반면 인증기관은 청문을 하자고 맞서고 있다. 농가가 행정소송까지 가서 이긴 경우 인증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명쾌한 절차도 현재로선 없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관계자는 “농가가 승소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면서 “김씨의 인증 취소 처분이 취소돼도 (1년마다 갱신하는) 인증이 지난해 7월께 종료돼 다시 인증을 따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이런 사례가 김씨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농관원에 따르면 행정 처분으로 인증 취소된 건수가 2020년 2479건, 2021년 3968건이다. 잘못한 농가도 있지만 비산 등으로 피해를 본 억울한 농가도 적지 않을 것으로 추측된다. 정영기 한국친환경농업협회 교육국장은 “지난해만 10여농가가 억울함을 협회에 호소했는데 대부분 농가가 소송이나 행정 처분 절차를 몰라 인증을 포기한다”고 전했다.
농림축산식품부도 문제를 인식하고는 있다. 농식품부는 인증기관이 재량으로 재심사 여부를 결정하던 것을 농가가 신청하면 반드시 재심사하는 내용으로 ‘친환경농어업 육성 및 유기식품 등의 관리·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을 손질해 최근 입법예고했다. 이에 앞서 인증기관의 농약 오염 확인 방법 등을 개선하기 위해 표준매뉴얼을 만들어 보급했다.
하지만 친환경 진영에선 인증제를 ‘결과’에서 ‘과정’ 중심으로 개편하지 않는 한 선의의 피해자는 계속 나올 것이라고 지적한다. 정 교육국장은 “농약 검출 결과에 전적으로 의존할 게 아니라 생태다양성 지표를 개발하는 등 농사 ‘과정’에 입각해 인증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석훈 기자 shakun@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