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농사용 전기 실태점검 젓갈 등 가공식품 저장 이유 구례 농가 60여곳에 ‘과징금’ “가공·유통 등 6차산업 육성 농촌현실 무시한 처사” 반발 대책위 구성 ‘원상복구’ 요구
농사용 전기를 사용하는 저온저장고에 김치 등 가공식품을 보관했다는 이유로 한국전력공사로부터 ‘과징금 폭탄’을 맞은 전남 구례 농가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농민단체로 구성된 대책위원회와 구례군의회가 규탄하고 나섰지만 한전이 최근 장흥에서도 저온저장고 사용 실태 조사에 나서면서 파장은 더욱 커지는 모양새다.
지난해말 구례군 구례읍·산동면·토지면·광의면 등지에서 농업용 저온저장고 사용 실태를 점검한 한전 구례지사는 일부 농가에 농사용 전기 사용 계약을 위반했다며 과징금을 부과하고 일부는 일반용 전기로 전환 처리했다. 농업용 저온저장고에 일반용 전기요금을 적용받는 장아찌와 같은 가공식품을 보관했다는 이유였다.
한전이 적발해 과징금을 부과한 농가는 60여곳, 과징금은 5000여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농가들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현재 농업·농촌 실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한전의 일방적인 처사라고 주장한다. 정부가 농업을 6차산업으로 육성하고 농가가 생산뿐 아니라 가공·유통까지 책임져야 하는 게 요즘 농촌 현실인데, 농업용 저온저장고에 가공식품을 저장할 수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농가가 직접 생산한 농산물을 오래 보관하기 위해 장아찌로 만들고, 김치를 담그고, 진액(엑기스)을 만드는 것인데 그 가공식품을 농업용 저온저장고에 보관했다고 규정 위반이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허성자 광의면 방광마을 부녀회장은 “정부 시책에 따라 산나물을 이용한 식당도 열고 체험장도 운영하느라 장아찌를 만들어 보관했는데 이걸 규정 위반이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얼마 전 일반용 전기로 전환된 전기요금 고지서를 받고는 분통이 터져서 식당 문을 닫아버렸다”고 말했다.
과잉점검이라는 불만도 이어졌다. 작업 편의상 저온저장고 한쪽에 새참으로 먹을 음료수나 김치 등을 소량 둔 것뿐인데 그걸 문제 삼는 것은 심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사전에 지도나 계도 기간 없이 불시에, 일방적으로 점검해 적발한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농가들 반발이 이어지자 한전은 해명자료를 내고 점검 과정과 과징금 부과 등에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한전 측은 “점검 당시 창고에는 농작물이 아닌 일반용 전기요금을 적용받는 물품이 다량 보관돼 위약 처리했다”고 밝혔다. 또한 농사용 전기요금은 일반용 전기요금의 절반 이하 수준으로 사용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으며, 가공하지 않은 상태의 농작물이나 단순 가공한 농산물만 저장할 수 있고 김치·젓갈 등 가공식품은 저장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에 구례 농민단체들은 최근 ‘농업용 전기 문제 해결을 위한 구례군 대책위원회’(위원장 정명이)를 구성하고 한전 측에 사과와 원상복구를 요구했다. 대책위원회는 성명서를 내고 “한전 구례지사가 농업용 저온저장고 등 농사용 전기를 사용한 농민에게 부당한 전기사용료 과징금을 부과하고 일반용 전기로 전환한 행태를 규탄하며 부과된 과징금을 취소하고 반환하라”고 요구했다. 이와 함께 일반용 전기로 전환한 농가도 다시 농사용 전기로 재전환하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농가들 반발에도 불구하고 한전이 최근 장흥군 관산읍에서도 농업용 저온저장고 실태 점검에 나선 것으로 알려지면서 농민단체도 대응 집회를 예고해 갈등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정명이 위원장은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남도지회가 6일 나주 혁신도시 한전 앞에서 집회를 열 예정”이라며 “시·군이 아닌 도 차원에서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례·장흥=이상희 기자
montes@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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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구례군 한국전력공사 구례지사 정문 앞에서 ‘농업용 전기 문제 해결을 위한 구례군 대책위원회’가 기자회견을 열고 농사용 전기를 사용한 농민에게 부당한 전기료를 부과한 한전의 사과와 과징금 취소 등을 촉구하고 있다.
농업용 저온저장고에 장아찌를 보관했다는 이유로 전기요금이 농사용에서 일반용으로 전환돼 전기요금 폭탄을 맞은 농민이 망연자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