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詩 읽기] 이 병 률
꽃의 폐업
이정희
꽃도 따끈할 때 꽃이지
식으면 폐업이다
리어카에 실린 채 방치된
국화빵을 구워내던 틀
한때는 한 봉지의 가을이 제철
따뜻했다는 증거
기억을 붓고
시간을 노릇하게 뒤집으며
사는 일이 다 그런 것이라 믿었다
쉴 틈 없는 반복이
일생을 끌고 간다고 생각했다
그사이 붙들지 못한 가을이 몇 번 지나갔다
추웠던 꽃의 틀이 녹슬고
뜨뜻미지근한 가을볕도 없이 겨울이 왔다 (후략)
겨울이 왔었어요. 이렇게 과거형으로 쓰고 있는 것은 기다리는 것이 있기 때문이에요. 이번 겨울, 기후 위기 탓으로 엄청난 추위와 폭설이 발걸음을 잡아매고 있습니다. 사막에는 장마처럼 비가 내리기도 했고요. 우리는 기후 위기라는 말을 쓰지만 일본에서는 최근 ‘기후 포기’라는 말을 쓰더군요. 좀더 강력한 분위기의 언어는 분명 선명한 효과를 가져다줍니다. 마치 시의 힘처럼 그게 그렇습니다.
이정희 시인의 시 <꽃의 폐업>에는 약한 존재들이 등장합니다. 꽃·리어카·국화빵·가을볕…. 거의 모든 시인의 눈가에는 이런 종류의 여린 것들만 머물다 갑니다. 우리를 한걸음 늦추게 하고 잠시 어지럽게도 하며 또 붙들겠다고 말입니다. 우리 지난날들이 따뜻했다는 증거를 떠올리기 위해서라도 틀에 뭔가 넣어 닫아두고 싶습니다. 국화빵 틀 안에 온기가 남아 있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시인은 그렇게나 말도 안되는 것들에 희망을 거는 여리디여린 사람입니다.
절대 우리가 이길 수 없는 것은 시간이며 기후입니다. 시간에게 수도 없이 졌으니 기후는 명백히 붙들어야 합니다.
아직 달력을 갈아 걸지 못한 벽 한쪽을 올려다보며 생각합니다. ‘붙들지 못한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왔었어요. 겨울은 안 붙들어도 좋으니 조금 성큼 마음을 앞세워 기다리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작업실 창문 앞에 겨울을 부둥켜안고 자라는 벚나무의 벚꽃은 내게, 그렇게 살지 말라고 말해주는 것 같거든요. 자주 바라는 것이기도 하지만 벚꽃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그때가 오면 아주 진하게 물든 다음 그 온기를 조금 나눠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