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고 진 하 시인·야생초연구가
개여울은 자욱한 안개에 덮여 흰 비닐을 씌워놓은 것 같았어. 개여울을 옆에 끼고 둑길을 걷는 내 걸음걸음도 치렁치렁한 안개 때문에 다른 때보다 더뎌졌지. 해가 있을 때는 백로며 청둥오리·까치·까마귀를 심심찮게 볼 수 있었지만 자욱한 안개 때문인지 새들의 움직임도 볼 수 없었지.
산책하는 내내 마음이 상쾌해지지 않았어. 유튜브를 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걸었는데 그나마 음악이 안개 때문에 가라앉은 마음을 추슬러줬지. 그래, 이런 날 음악은 삶의 양약이야.
아침 산책을 마치고 대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섰는데 마당 안이 새소리로 시끌벅적했어. 웬 새들? 새소리가 들리는 쪽을 보니 장독대 뒤편 소나무와 목련·모란·생강 등 나무들이 서 있는 곳에 물까치들이 떼로 몰려와 나뭇가지 사이를 오르내리며 깍깍대고 있었어. 요 녀석들 먹을 게 있는 걸 알고 와 아침식사를 하고 있구나.
사흘 전 새벽이었지. 아내는 장독대로 된장을 뜨러 갔는데 전날 내린 폭설로 덮인 장독대 뒤 나무 밑에 낯선 발자국을 보았던 거야. 우리 집을 자주 드나드는 개나 길냥이 발자국보다 훨씬 큰 발자국. ‘이거 뭐야? 설마 고라니가 담을 넘어 우리 집 안까지?’ 20㎝가 넘는 적설이니 산짐승들도 먹이를 구하기가 어려웠을 것. 이런 생각이 든 아내는 무청 두타래와 길냥이 주려고 사다둔 사료를 가져다 나무 밑에 뿌려주고, 사과 몇개를 반으로 쪼개어 나뭇가지에 걸어뒀던 거야.
그렇게 먹이를 놓아둬도 고라니가 다시 온 흔적은 없었고 오늘 물까치들이 몰려와 조찬을 벌였던 거야. 지난 초가을엔 텃밭 가에 있는 꾸지뽕나무 열매를 떼로 몰려와 몽땅 서리해 간 적이 있었지. 그렇게 서리해 가도 미워할 수 없는 건 청회색을 띤 날개와 긴 꼬리가 무척 아름답기 때문이야. 물까치들이 그렇게 조찬을 하는 동안 나는 녀석들을 방해하지 않으려 내 방 앞 쪽마루에 쥐 죽은 듯이 앉아 있었지. 그렇게 앉아서 새소리를 듣는 동안 며칠 전에 읽은 시 한수가 떠올랐어.
“새는 타고난 목소리로/고유한 화법으로 말을 한다/나는 말뜻을 알아들을 수 없지만/감정을 짐작할 수는 있다/새는 말끝을 높게 올리거나/옆으로 늘이며 말을 한다/그리고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새가 다시 울기 시작할 때…그늘의 풀도/나도/생화를 받아 든 연인의 두 손처럼/낙담을 잊는다”(문태준 <새가 다시 울기 시작할 때>).
깍깍거리는 새들의 조찬이 얼마나 이어졌을까. 그동안 나는 조용히 앉아 새소리를 경청하며 ‘생화를 받아 든 연인의 두 손처럼’ 세상살이를 하며 겪는 낙담을 잊고, 안개 속 길을 걸으며 느낀 우울도 치료된 느낌. 심각한 기후변화로 생물다양성의 훼손을 염려하는 뼈아픈 소식들이 자주 들리지만 오늘 하루는 물까치들의 명랑의 기운을 덧입어 내가 만나는 지구 생명체에 명랑의 노래를 선물할 수 있을 것이네.
새들이 떠난 후 장화를 신고 장독대 뒤 눈밭으로 가봤어. 아내가 나뭇가지에 걸어둔 사과 조각은 새들이 파먹어 거의 껍질만 남아 있었어. 그런데 아내의 측은지심을 자극한 눈밭 위의 고라니 발자국은 아직 그대로 있었어. 그 깊은 발자국에는 그녀의 측은지심이 햇귀처럼 따뜻하게 고여 있었어.